사설칼럼

[중앙시평] 문재인 대통령의 '위대한 후퇴'

고대훈 2018. 8. 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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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핵심 동력 고장 나고
'일자리 대통령' 꿈은 점점 멀어져
고용대란 걱정하는 기가 막힌 상황
무모한 돌진은 참극 빚을 수 있어
밥벌이 보장하도록 궤도 수정해야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직접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기자의 펜을 잠시 접고 종이신문을 찍어내는 공장 대표를 3년간 맡았다. 윤전기에서 갓 인쇄된 신문이 긴 벨트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영화의 그 장면이 연출되는 곳이다. 영화의 낭만적 풍경과 달리 인터넷과 디지털에 밀려 사양의 길을 걷는 업종이다. 2014년 초 한겨울에 공장 노동자들과의 첫 상견례 저녁을 잊을 수 없다. “고용 유지를 약속해 주세요.” 그들의 절박한 눈빛과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계를 돌리는 230명의 블루칼라는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구조조정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답변의 전부였다. 지키기 힘든 약속은 위험하다. 그러면서 터득한 게 있다.

첫째, 돈이 인격이다. 돈을 벌어 일자리를 보장할 때만 경영자는 존중받는다. 일감을 더 따와 가동률을 높여 매출과 이익을 늘려야만 고용을 유지해줄 수 있다. 그게 피를 말리는 일이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종종 찾아온다. 둘째, 사람 줄이기의 유혹은 유령처럼 배회한다. 현상유지는커녕 존폐의 기로 앞에 서면 임금 동결이나 비용 절감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 최악의 경우 수지를 맞추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조조정, 즉 감원이다. 셋째, 남의 밥벌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사소한 판단 실수가 누군가의 삶을 붕괴할 수 있다.

최저임금 논란이 공장의 기억을 불러냈다. 최저임금을 확 올리면 봉급생활자의 소득과 소비가 늘고, 덩달아 기업 생산이 증가해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분수효과(Trickle-up effect)’라는 고상한 표현도 쓴다. 각종 수단을 동원해 윽박지르면 사업주는 어쩔 수 없이 좇아온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식당·치킨집·편의점 자영업자든, 소상공인이든, 중소기업인이든 사업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안다.

고대훈 칼럼
그들은 내년 최저임금 ‘8350’원을 그저 숫자가 아니라 위기의 메시지로 읽는다. 인건비 지출이 늘고 돈은 더 벌리지 않는 상황이 올 테니 계산기를 두드리라는 경고라고 본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인격’을 버리고 긴축과 감원의 유혹에 다가서라는 장사꾼의 동물적 본능이 작동한다. 고용과 해고는 선악의 도덕적 차원이 아닌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17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과 역대 최대의 실업급여 지급액이 그 징후를 말해 준다. ‘8350’은 고용이란 시한폭탄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다.

최저임금의 역습은 220여 년 전 프랑스대혁명 때 벌어진 유명한 ‘반값 우유 사건’을 떠올린다. 공포정치를 폈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지지세력이던 서민을 위해 우유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도록 명했다. 이후 소값 폭락→소 사료값 등락→우유값 폭등의 연쇄반응을 몰고 와 종국엔 로베스피에르를 몰락시켰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했던가. 소득주도 성장이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다. 임금인상은 일자리 위협→물가 상승→소비 위축→경기 후퇴를 거쳐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선의였겠지만 서민들의 불안한 일자리를 더 위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펴는 사회주의적 분배의 정의에 공감한다. 111년 만의 폭염 속에 잠 못 드는 옥탑방 사람들을 배려하고, 배고프고 약한 사람에게 조금 더 나눠주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실물경제를 잘 모르는 운동권과 시민운동가, 책상물림 교수의 절묘한 조합이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실험하고 있다. 임금을 올렸으니 소비가 진작될 것이라며 “하면 된다”고 우긴다. 한쪽에선 불복종 운동이 벌어지는데, 자신의 확증편향에 갇혀 오만과 독선 속에 밀어붙인다. 60% 초반으로 주저앉은 대통령의 지지율은 불황 탓도 크지만 이런 불통에 대한 실망감이 녹아 있다.

공장 경험에서 얻은 세 번째 교훈이 밥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것이다. 밥은 일자리에서 나온다. 저들의 이념과 가치 실현을 위해 내 밥벌이를 실험용 쥐 취급하는 건 모욕이다.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에서 말한다. “그날그날 벌어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던 서민들이 그보다 더 하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아무런 죄도 없고, 책임져야 할 일도 없지만 그들은 사회 구조의 제물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금 딱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동력인 최저임금 정책이 단단히 고장 났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꿈은 점점 희미해진다. 수리하지 않은 채 무모한 돌진을 하다 고용 대란의 참극을 맞을까 걱정된다. 문 대통령이 궤도 수정을 결정한다면 ‘위대한 후퇴’로 평가받을 것이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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