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수찬의 軍] "기무사 제압하려다.." 거취 논란 자초한 송영무 장관

박수찬 2018. 8. 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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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안보전략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과 관련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경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 인사의 경질설이 제기되면 ‘선긋기’에 나서던 청와대가 “확인해 드릴 게 없다. (송 장관 경질 여부를 포함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기무사 문건 관련 조사는 지금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송 장관과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육군 대령이 국회 국방위에서 방송 생중계 도중 진실공방을 벌인 것은 송 장관에게 치명타를 입혔다는 평가다. 방대한 정보와 풍부한 정치감각을 갖춘 기무사를 철저히 장악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건드리다 역풍에 직면하면서 리더십이 뿌리째 흔들리는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안을 건의받고 새 기무사령관으로 남영신 중장을 임명했다. 또한 기무사의 전면적이고 신속한 개혁을 위해 현재의 기무사를 해편하고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모습. 연합뉴스
◆기무사만 잘 처리했으면 거취 논란도 없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송 장관은 여느 정권의 첫 국방부 장관과는 많은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노무현정부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 이래 10여년만에 등장한 해군 출신 장관이라는 점에서 ‘비육군’ 이미지가 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지난해 상반기 대선 캠프 국방안보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서 문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공신’이기도 했다. ‘공신’과 ‘비육군’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송 장관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와의 설전, 여성 관련 실언 등 논란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노무현정부 첫 국방부 장관이었던 조영길, 이명박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상희, 연평도 포격 직후 급하게 취임한 김관진 등과 달리 재임 초기부터 국방개혁에 대한 압박감도 심하지 않았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안보를 강조했던 과거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국방 분야에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반면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경제, 적폐청산 등에 초점을 맞췄다. 적폐청산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국정 기조를 정책에 반영하고 군 복무기간 단축, 병사 월급 인상 등 대선 공약을 잘 이행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일 무궁화회의에 참석해 장군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하지만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을 송 장관은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보고받았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8쪽짜리 원본은 6월 28일, 세부자료는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존재를 확인한 직후인 지난달 19일 청와대에 제출했다. 문 대통령이 같은달 16일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세부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은 송 장관 교체설에 불씨 역할을 했다.
지난달 7일 국방부 실국장 간담회 발언을 놓고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육군 대령과 벌인 진실공방은 송 장관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이 확산되면서 기무사를 적으로 만든 것이 ‘미니 쿠데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지적이다. 송 장관은 “장관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TV로 생중계된 하극상 논란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군 소식통은 “국회의원과 진실공방을 벌였다면 몰라도 장관실과 인접한 국방부 내 부대장이 장관을 정면으로 들이받았으니 사람들이 장관을 어찌 보겠나”고 말했다.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육군 대령(왼쪽)은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장관은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위수령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되는지 검토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국회방송 캡쳐
◆청와대와 송 장관 ‘어색한 동거’ 가능성

송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방개혁 2.0 발표 직후 내부적으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5일부터는 터키와 인도를 방문해 방산협력 등 국방 현안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퇴임식 직전까지 일하는 게 장관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민 대령과 맞붙으면서 장관의 영(令)이 서지 않을 지경이 됐는데 계속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느냐”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가 각종 구설에 휩싸였던 송 장관을 지금까지 엄호해온 것은 기무사 개혁을 포함한 국방개혁 2.0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게 군 안팎의 해석이다.

노무현정부 당시 국방개혁 2020이 집권 중반기에 완성되면서 원래 설정했던 군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던 전례를 잘 알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국방개혁 2.0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국방개혁 2.0은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집행만 남은 단계다. 문 대통령이 3일 기무사를 해편(解編)해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하고 신임 기무사령관에 남영신 특전사령관을 임명하면서 기무사 개혁도 집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송 장관의 역할이 끝났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 소식통은 “송 장관 체제를 유지하면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사람이 국방개혁 2.0을 집행하고 청와대가 감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하극상 논란을 겪은 송 장관을 교체하면 “하극상이 일어날 때마다 장관을 교체할 것이냐”는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민 대령 폭로에 대해 “사건의 본질은 육군 대령이 해군 출신 국방부 장관을 들이받은 것”이라며 해당 사건이 송 장관 거취와 군 내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 장관 거취 문제가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기무사 파문과 송 장관 거취 문제가 악재로 작용하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는 △국민들이 호응할 참신한 국방정책 제시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 내세우기가 꼽힌다.

국방개혁 2.0과 기무사 개혁안을 발표한 상황에서 다른 정책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기무사 개혁도 신임 기무사령관에 기존과 동일한 계급인 육군 중장이 임명됐고, 사령부 체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파격적인 조치는 아니다.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것도 검증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 기준으로 (송 장관) 후임이 나이스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사가) 당장은 여의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현직 군 관계자들이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일부 인사는 “너무 올드보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령 폭로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송 장관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통한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군축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철매-2 개량형 요격미사일 생산규모 축소 등 예민한 사안을 최대한 미루면서 국방개혁 2.0 집행과 기무사 개혁에 역량을 집중하면 다소나마 명예회복을 할 수 있다. 송 장관이 지난달 27일 국방개혁 2.0 대통령 보고 후 “국방개혁 2.0과 기무사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점을 의식했다는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세간의 인식과 달리 청와대와 송 장관의 ‘어색한 동거’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정권에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송 장관은 민 대령 파문에 따른 상처를 봉합하는 수준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애매한 상황이긴 하지만,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발라 흉터가 남지 않은 채 완치하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지 않느냐”며 군검 합동수사단 수사, 기무사 해편 후 새 사령부 설치 등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의 인적, 제도적 수습 상황에 따라 송 장관 거취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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