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상연의 시시각각] 청와대 소통이 2% 부족한 까닭은

최상연 2018. 8. 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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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상대로 감성팔이 들이는 노력
야당 소통에 나누면 정치 달라질 것
최상연 논설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타고난 달변가였지만 ‘정치인이 원고 읽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게 평소 소신이었다. 광복절 같은 의례적 행사 땐 준비된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문제로 ‘김대중 불통’이 분노를 만든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명연설이 많았다. 반대로 불통 비난에 시달리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0차례 넘게 라디오 연설에 도전했지만 노변담화의 흥행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대충 자화자찬인 일방통행을 소통으로 여기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라 대통령의 열정과 진심이다. 신뢰 역시 감정의 과잉 아닌 진정성에서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그런 딜레마에 빠졌다. 청와대 대변인은 엊그제 피랍 국민을 놓고 “그의 조국과 그의 대통령은 결코 그를 잊은 적이 없다”고 논평했다.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인다”는 문학적 수사도 곁들였다. 묻지마 지지층이야 국민의 답답한 가슴에 울림을 주는 감동의 브리핑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본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3월 소방관 세 명이 순직하자 “서른 살, 스물아홉 살, 스물세 살이라고 한다. 인생의 봄날이었기에 슬픔은 더 가눌 길이 없다”던 바로 그 청와대다. 의도적인 건지 결과적인 건지는 모르지만 매번 세월호를 떠오르게 한다. 문제는 이번엔 사람 목숨이 걸린 긴박한 납치 상황이란 점이다. 김선일 참사의 아픈 과거도 생생하다. 엄중한 때 이런 식의 ‘국내 지지층용 시’나 읊조리는 정부는 들어보질 못했다. 최소한 수준 높고, 전략적이고, 단호한 목소리는 아니다.

연출 논란에 빠진 문재인 대통령의 호프집 행사도 출발점이 다르지 않다. 과잉 문제다. 요지는 참가자 중 겹치기 출연의 섭외가 있었다는 건데 그건 그럴 수 있다. 대통령 행사란 어느 정도 각본이 불가피하단 걸 대부분 인정한다. 밀짚모자를 쓴 박정희 대통령이 농부와 사발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과 뭐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다들 조금 놀라셨죠?”라고 인사했다. 깜짝 이벤트로만 알았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알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홍보팀의 오버가 대통령의 진의를 가렸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지금 여당은 전임, 전전임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 때마다 ‘겉만 번지르르한 이벤트성 서민 행보’라고 퍼부었다. ‘대통령은 떡볶이집에 가지 마라. 손님 떨어진다’는 논평도 냈다. 호프집 미팅은 과거와 다를 수 있다. 그러자면 살아 있는 현장 목소리를 들은 뒤엔 뭔가 정책 변화가 나와야 한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자마자 정부는 최저임금을 그대로 확정했다. 정치 쇼까진 몰라도 감성 정치는 맞다.

아마도 감성 마케팅의 달인이란 탁현민 행정관이 주도했을 것이다. 문제는 ‘탁현민 따라 배우기’가 일상이고 확산일로란 거다. 정부 부처에서도 모든 이벤트에 탁현민 방식이 교과서란다. 심지어 행정관 거취까지 이벤트다. 그가 사의를 밝히자 청와대는 “첫눈 오면 놓아주겠다”는 연애할 때나 쓰는, 개그 수준의 문자를 내놨다. 멋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멋있어 보이려 했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여성계는 “첫눈 왔다”며 눈 스프레이를 뿌렸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도 ‘비서에게 우산 씌워주는 오바마’와 같은 감성 홍보물 폭탄으로 ‘선거운동 일상화’란 비난을 샀다. 그래도 그는 야당과의 소통에도 열심이었다. 릴레이 전화와 위스키 소통으로 여소야대를 돌파했다. 문 대통령을 ‘소통 대통령’이라고들 한다. 그런데도 야당은 겉돌고 국회는 멈췄다. 국민 감성을 건드리는 데 들이는 노력을 야당 소통에 나눈다면 정치가 확 바뀔 게다. 잘한 건 모두 내 탓이고 잘못된 건 죄다 전 정권 탓이라면서 덮어놓고 이벤트면 그건 그냥 감성팔이 아닌가.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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