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양권모 칼럼]'노무현의 꿈' '노회찬의 꿈'

양권모 논설위원 2018. 8. 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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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선거제도를 바꾸자, ‘노무현의 꿈’과 ‘노회찬의 꿈’이 강렬히 마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개편할 수만 있다면 권력을 내놓겠다(대연정)는 제안까지 했다.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선거제도 개혁의 열망이 절절히 담겨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새기기를 바라며 주요 대목을 옮긴다. “대연정 제안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그렇지만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렸던 이유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1등만 살아남은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폐해를 몸소 체감한 적이 있다. 2010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는 선거를 완주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들었다. 가치와 소신을 지키면 욕을 왕창 얻어먹는 게 현행 선거제도인 꼴이다.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야말로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시작입니다. 그 토대 위에서 공정한 사회도 가능합니다.”(2018년 2월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현행 선거제도를 바꿔야 할 이유는 차고넘친다. 1등이 독식하는 무자비한 다수결은 지역구도를 고착시키고 분열과 적대의 정치를 공고히 한다. 거대 기득권 정당을 낳게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정치구조를 낳는다.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표가 사표가 됨으로써 대표성에 심대한 왜곡을 가져온다. 정당득표율과 의석수 사이 현격한 격차가 발생,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약화시킨다.

선거 때마다 이러한 폐해를 노정해온 현행 선거제도의 개편이 번번이 좌절된 것은, 특정 지역에 기대어 과대 대표의 과실을 일방으로 누려온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한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 권역별 연동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역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을 외면해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가 거꾸로 한국당에 재앙이 됐다.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처지가 바뀐 것이다. 이제, 이대로는 다음 총선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선거제도 테이블로 한국당을 끌어낼 터이다.

‘노무현의 꿈’, ‘노회찬의 꿈’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지방선거 결과, 완전히 뒤바뀐 여야의 입지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할 기회를 조성했다. 한국당은 거부하기 어렵게 됐고, 다른 야당들은 모두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개혁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만 결단하면 실로 ‘꿈은 이루어진다’.

한데 민주당이 수상하다. 지방선거를 통해 현행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되면서 주판이 달라진 탓이다. 지방선거 결과는 어김없이 과대 대표의 심각성, 사표의 문제 등을 드러냈다. 다만 그 수혜자와 피해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전국 평균 51.4%의 득표율로 지역구 광역의원 82%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대로 가면 2020년 총선에서 승리도 따논 당상인데 굳이 선거제도를 손대느냐, 악마의 속삭임에 흔들릴 만하다.

물론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민주당으로선 현행 선거구제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른다. 민의를 현저히 왜곡시키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다음 총선에서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정치에서 2년은 긴 시간이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싹쓸이 승리에 취해,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낡은 정치구조를 객토할 절호의 기회를 차버린다면, 선거개혁은 영영 물 건너간다. 득표율이 의석수와 일치하고, 시민의 의사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 놓아야 민주당이 꿈꾸는 ‘100년 정당’도 가능해진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 행여 목전의 타산에 매몰되어 ‘노무현의 꿈’을 영구히 사장시키는 반동의 역할을 민주당이 맡는다면 그건 너무 희극적이고 동시에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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