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김동연에 "복제약값 올릴 수 있게 해달라"

2018. 8. 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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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이재용 부회장과 간담회
규제완화-투자·고용 빅딜 다시 꺼내
"삼성이 성장동력 선도적 역할을"
바이오산업 규제완화 등 검토 밝혀

[한겨레]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간담회를 마친 뒤 브리핑에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배웅을 받고 있다. 평택/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을 내건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구체적인 규제완화 요청을 적극 수용하는 대신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혁신”을 거듭 강조하며 관련 법률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특정 대기업의 사업과 연계해 투자·고용 약속을 주고받는 식의 규제완화는 사실상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과 취임 뒤 첫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 남짓 진행된 비공개 회동을 마친 뒤 김 부총리는 “(이 부회장 쪽에서) 바이오 분야 규제개선 등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 상당히 구체적인 건의와 애로사항 전달이 있어, (정부가) 일부는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좀더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외 다른 계열사에선 유일하게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참석했고, 정부 쪽에선 김 부총리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 등의 차관과 함께 보건복지부 국장급 간부가 배석했다. 삼성 쪽은 이날 바이오 외에 평택단지의 안정적인 전력확보 방안, 5G 등 미래 성장산업의 경쟁력 제고, 핵심 산업기술 보호방안 등에 대해서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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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삼성 쪽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중심으로 특히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약가를 높이기 위해 제약업계에 자유로운 가격 결정 권한을 달라며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국내에서 약가 결정은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업체 사이의 협상으로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바이오시밀러는 신약(오리지널 의약품)의 70% 수준에서 보험약가를 받을 수 있는데, 특허 만료 신약도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되면 보험약가가 종전보다 20~30% 강제로 인하된다. 이렇게 되면 바이오시밀러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가격규제를 풀어 신약 약가 수준을 현재보다 끌어올려야 한다는 취지다. 주로 바이오시밀러를 만드는 삼성바이오에피스입장에서는 약가 자율결정을 통해 높은 수익성을 보장받기를 원한 셈이다.

다만 삼성 쪽 건의처럼 업계 자율로 약가가 결정될 경우 약가의 적정성을 신뢰하기 어렵고, 환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부분 때문에 반론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의가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검토는 할 수 있지만 약값은 국민 부담이나 건강보험 재정과도 연결돼 있는 문제인 탓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이날 김 부총리에게 “바이오가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또 이날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 경제의 대표주자인 삼성의 역할이 크다.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며 “또 동반성장 모범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한편, 국민적 지지와 국내외 투자가들의 신뢰가 바탕이 될 수 있도록 투명한 지배구조 정립에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삼성 쪽도 “3년간 정부와 함께해온 스마트팩토리 보급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1~2차 협력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3차 협력사까지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투자 독려에 나선 뒤 줄곧 관심을 모았다. 경기가 둔화되고 각종 지표가 악화하면서, 정부가 경제운용의 무게중심을 대기업 투자 유도 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르면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을 두고 재벌그룹의 팔 비틀기로 투자를 이끌어내는 과거 정부의 행보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를 의식해, 이날 삼성은 향후 투자·고용 확대계획 발표를 별도로 하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삼성 쪽이 진정성을 가지고 굉장히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조만간 삼성의 결정에 따라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발표한 경기 이천의 반도체 공장(M16) 15조원 투자 계획도 정부가 나서서 투자 시기를 앞당긴 경우다. 지난 3월 김 부총리와 간담회를 한 에스케이 쪽은 반도체 공장 인허가를 두고 정부 관계부처와 논의를 해왔는데, 공장 추진부터 정부 동의를 구하는 데까지 1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강 수계로, 수질보전 특별대책 권역에 포함된 이천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진 것이다. 앞서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이천에 추진한 또 다른 반도체 공장(M14) 인허가에는 7년여가 걸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당시 환경단체들은 “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은 2006년 이후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환경정책, 균형발전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정책적 기준표였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에스케이 쪽 관계자는 “신규 투자를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부가 이런 규제를 풀어주면서 이사회에서 투자를 승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부총리도 이날 간담회에서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이를 통해 35만명을 추가 고용하기로 한 점을 거듭 언급하면서, “금년에 일자리 전망을 18만개로 줄였는데 20만개 이상이 나올 수 있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투자·고용을 명분으로 내건 정부의 규제완화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를 가로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신해나가야 한다”며 “국회도 혁신성장 관련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재벌 대기업에 사실상 특혜를 주면서 투자·고용을 독려하는 것은 과거 보수정부의 행보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대기업 만남과 애로사항 해소→기업의 투자·고용 약속→정부의 발표’ 형태로 반복되는 행보는 실효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글로벌 대기업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개입하기도 어렵고,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늘린다기보다는 정부의 시그널에 따라 투자 시점을 조정하는 정도의 의미만 있어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큰 효용성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준호 최현준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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