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목멱칼럼]'구걸'과 '협조'의 차이

최은영 2018. 8.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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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지난 3일 한 언론은 “청와대가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 방문에 대해 정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동연 부총리 측은 “삼성전자 방문 계획과 관련해서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보도내용 중 사실관계나 정부방침과 다른 점도 있지만 특히
기사에서 인용된 일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만일 청와대가 진짜 ‘구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가정한다면 기가 막힌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 성립한다고 할 때, ‘구걸’이라는 단어를 통해 현 정권의 사고구조를 잘 알 수 있기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현 정권은 출범 후 ‘분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또 취임 후에도 여러 차례 지방분권 개헌과 실질적 분권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방분권뿐만이 아니라 권력 분산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임을 강조했었다. 지난번 개헌 논란이 있을 때도 청와대는 권력 분산을 강조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지방 분권도 권력 분산이지만, 대통령이 갖고 있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권력 분산의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거버넌스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다. 거버넌스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협치’다. 그런데 협치라는 단어, 즉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우리 정치권은 야당과 공조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협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학문적 의미에서의 거버넌스 즉, 협치는 기업,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와 정부가 동등한 입장과 위치에서 함께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세계화와 정보화 추세 속에서 정부의 역할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되고, 오히려 기업의 영역이 확장된다. 그리고 인터넷 등의 발달로 인한 정보화 덕분에 국가에 의한 정보의 독점이 깨지게 돼 시민사회의 규모 역시 급성장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 운영을 위해 시장과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와 공조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거버넌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거버넌스는 정부에 의한 국가권력의 독점이 깨짐을 의미하고, 국가 권력을 정부와 시민사회, 기업 그리고 시장이 공유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거버넌스는 이 시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청와대가 기업에 ‘협조’를 구하는 것을 ‘구걸’로 생각한다면, 이는 권력 분산의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어 일자리 문제와 같은 사안은 기업과 국가가 함께 고민해야하는데 이를 두고 ‘구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주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라는 것은 국가가 경제와 사회에 개입함을 의미하고, 그래서 일종의 ‘정부 만능주의’ 혹은 ‘국가 만능주의’적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까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가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사고는 일자리 창출을 정부 주도로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공무원의 증원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국가 재정만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청와대가 ‘구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정부 만능주의’적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이고, 그것이 지금 시대의 민주주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부가 아무리 권력을 독점하려 해도 지금 세상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대, 즉 시장과 기업과 시민사회도 각각 권력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 슈퍼맨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대적 추세에 가장 들어맞는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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