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몇십초 만에 45도 이상 기울어져..퇴선 늑장 책임 커졌다

2018. 8. 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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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조위가 밝힌 사실들]
기존 추정 '좌현 30도' 크게 넘어서
화물, 18~20도 때 움직이기 시작
45도 때 대부분 제자리 벗어나
첫 침수도 D갑판 아닌 C갑판 쪽
선박자동식별 항적은 조작흔적 없어

[한겨레]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께 세월호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배는 왼쪽으로 넘어졌다. 배는 몇십초 만에 좌현으로 45도 이상 크게 기울어졌다. 사고 순간의 세월호 횡경사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가 확인한 것은 선체 인양 후 차량 블랙박스의 영상기록 데이터를 복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설립된 선조위가 1년1개월간 밝혀낸 새로운 사실을 모아봤다.

세월호 화물칸에서 수거된 차량 블랙박스는 총 26대이고, 이 중 영상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었던 것은 17대, 4월16일 사고 시간대의 영상이 녹화돼 있는 것은 7대였다. 복원된 7대는 모두 화물과 차량을 싣은 C갑판과 트윈갑판을 비추고 있었다. 블랙박스로 볼 수 있는 구간은 제한적이지만, 영상을 다각도로 분석해 선조위는 여러 사실을 추정해냈다.

우선 급선회가 시작된 뒤 1분 이내에 세월호가 좌현 45도 이상으로 크게 기울어졌음이 드러났다. 검찰과 법원, 해양안전심판원은 세월호의 초기 기울기를 “좌현 30도”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크게 기울어졌던 것이다. 45도 기울어지면 배가 다시 복원되기 어렵기에 퇴선 조치를 하지 않은 선원들의 잘못이 더 무거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승객 탈출 소요 시간을 추정한 가천대의 연구보고서를 보면, 배 기울기 52.2도에선 9분28초 만에, 59.1도에선 6분17초 만에 승객이 모두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다고 돼 있다.

화물이 두 단계로 이동했다는 사실도 블랙박스 영상으로 확인했다. 일부 화물은 18~20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45도에 이르자 대부분의 화물이 이동했다. 해양 자문 및 감정 업체인 브룩스벨은 초기에 이동한 화물로 D갑판에 있던 철근 더미와 드라이어(원형통 건조기), 트레일러를 꼽았다. 철근 더미를 묶었던 고박(고정) 장치가 횡경사 20도에서 파손됐고, 이 철근들이 옆에 있는 대형 드라이어와 부딪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철근 무게 탓에 드라이어 고박 장치도 파손되거나 풀리면서 좌현으로 이동했고 도미노처럼 대규모 화물 이동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초기 침수지점도 바뀌었다. 검찰과 해양안전심판원은 초기 침수를 D갑판 도선사 출입문과 선미 램프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C갑판 좌현 외판의 루버 통풍으로 확인됐다. 이 통풍구를 통해 배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E갑판 기관 구역으로 바닷물이 흘러들어갔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항적의 조작 여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선박자동식별시스템이란 선박의 위치, 속력, 제원, 화물의 종류 등 각종 정보를 자동으로 송수신하는 항해장비다. 선조위는 세월호가 출항할 때부터 사고 시점까지 선박자동식별시스템 로그원문데이터를 입수해 해양수산부가 최종 발표한 항적과 비교했다. 또 선박들의 항적 정보를 수집해 판매하는 민간업체인 네덜란드 메이드 스마트사에서 로그원문데이터를 구매해 재검증했다. 정부가 수집한 데이터는 조작할 수 있다고 해도, 국외 민간업체의 데이터까지 똑같이 바꿔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데이터 수는 일부 차이가 있었지만, 로그원문데이터의 항해 정보는 모두 똑같았다. 결국 선박자동식별시스템 로그원문데이터에는 조작이나 편집의 흔적이 없다고 선조위는 결론지었다.

세월호 외판 손상에 대한 조사는 브룩스벨과 선조위가 각각 진행해 외부 물체에 의한 선체 손상은 없다고 판단했다. 브룩스벨은 “잠수함이나 이와 비슷한 외부 물체 또는 외력 접촉과 일치되는 증거가 (세월호) 선체가 잠기는 부분에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선조위의 용역을 받은 인하대 연구진도 선체 변형 상태를 분석한 뒤 외력에 의한 변형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일부 변형이 관찰된 부분은 모두 좌우 대칭이라 선박을 건조할 때 발생한 오차이거나 운항 과정에서 누적된 변형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 배의 왼쪽 밑바닥에 있는 평형수 탱크에서도 파공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좌현 핀 안정기의 변형 상태에 대해서 선조위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좌현 핀 안정기는 최대 작동각인 25도를 넘어 50.9도까지 돌아간 상태로 발견됐다. 핀 안정기의 변형은 침몰 당시 해저면에 닿는 힘에 의해 생겼거나 잠수함 등 외부 물체와 부딪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선조위는 ‘외력 검증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검증했지만 어떤 쪽이 더 타당한지 확정할 수 없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선체 인양을 통해 세월호 화물을 적재하는 D갑판 앞부분에 고정식 고박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세월호는 2014년 2월 여수에서 선박정기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이러한 사실은 지적받지 않았다. 당시 선체검사를 맡았던 한국선급 검사원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C~E갑판을 돌며 검사했다고 진술했는데 당시 검사가 부실했음을 보여준다.

세월호의 맨 아래쪽인 E갑판 기관장비 구역의 미닫이문 2곳과 수밀 맨홀 5곳은 열려 있었고, 한국선급 수밀문 규정과 달리 폐쇄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지도 않았다. 항해 때 닫혀 있어야 하는 맨홀도 열려 있었고, 뚜껑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D갑판에서 E갑판으로 통하는 개구부도 13곳 중 10곳이 열려 있었다. 특히 C갑판에서 D갑판으로 이어지는 차량 이동용 경사로의 문도 닫혀 있어야 했지만, 닫히기는커녕 경사로 위에 차량 7대가 실려 있었다. 이 밖에도 선조위는 타기 유압장치(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과 경사시험 시 누락된 중량 등을 확인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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