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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산업자본의 힘 과소평가 안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입력 2018.08.07. 20:52

[경향신문] 필자는 지난 7월11일자 본란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몇 가지 내용을 고한 적이 있다. 규제완화를 신중하게 하고, 정당한 반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무엇보다 국민의 힘을 믿고 정당한 정책을 추진하시라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한 달 동안 경제 현장에 나타난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와 삼성 간의 거리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가깝고 그 추세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케이뱅크 구하기’에 거의 모든 경제팀이 매달리고 있다. 경제정책 전반에 걸친 우클릭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점증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토론의 장조차 거치지 않은 채 마치 무슨 특공작전하듯이 규제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심지어 국회 상황은 과연 지금 정권이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정권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재량권의 남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직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고,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재촉하고, 대통령이 직접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규제혁신 행사에 참석해서 은산분리 완화를 역설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심지어 금융감독기구에 대해서까지 “금융혁신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반대 의견을 가진 국회의원에 대한 설득에 나서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아마도 필자의 고언에 대한 대답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서도,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국민들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좋은 정책을 고심하고 힘들여 추진해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의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면서까지 무리를 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보유세 강화를 위해, 상법 개정을 위해, 보다 공정한 거래관행의 정착을 위해, 재벌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기 위해, 갑 대신 을과 병의 권익신장을 위해 힘을 합치고 손을 맞잡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전체 경제구조를 왜곡하면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정책을 앞에 놓고 서로 싸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경제는 이미 노령화에 따른 장기적 침체라는 수렁을 향해 조금씩, 그러나 확연하게 나아가고 있다. 물론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이 추세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새로운 성장정책을 만들어서 하향 추세를 반전시켜야 할 책임은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그 길은 어렵고 험한 길이다. 재벌에 의지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일부 국민의 불평과 불만도 다스리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규제완화를 통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 왜 ‘규제혁신만이 살 길’이라고 국민을 기만하는가. ‘사람 중심의 경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면 재벌을 쳐다보지 말고 국민을 쳐다봐야 한다.

통상 정치인이 이상한 정책을 펼칠 때 하는 말이 있다.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라고. 물론 정치인은 때론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때도 있다. 국민들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모든 관련 정보를 다 소화해서 의견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반대 역시 고루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고뇌에 찬 외로운 결정을 하고 나중에 역사로 심판받겠다’며 과감한 결단을 내릴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런 말이 엉뚱한 정책이나 부당한 정책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사용된 경우도 그동안 너무나 많이 봐왔다. 역사의 심판은 너무 늦게 오고, 정치인의 고뇌에 찬 결단은 그저 정책적 일탈일 뿐이었던 사례가 허다했다.

거대 산업자본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거대 산업자본은 국정농단사범이라는 혐의에도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고, 이미 사실상 폐기된 은산분리 완화 논의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먼지를 털어 대통령을 앞세워 국회를 당당히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권력을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오직 끝없는 경각심과 교과서적인 금융원리에 입각한 주장 정도만이 이런 권력을 간신히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그 힘에 물들어 이런 원칙을 허물려 하고 있다. 다시 한번 되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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