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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북한 核은 민족 資産'이라는 환상

지해범 기자 입력 2018.08.08. 03:14
核은 주민 아닌 김정은의 소유.. '위장 非核化' 합리화해줄 우려도
평화협정이 美軍 철수로 이어지면 '숨겨진 핵무력' 앞에 무릎 꿇을 뿐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최근 한 소모임에서 좌파 진영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통일 후를 생각하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보다 일부 핵을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이 강대국의 횡포를 견제하는 데 핵을 가진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는 "남(南)의 경제력과 북(北)의 핵이 합쳐지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 우리 세대에 이 위업을 이루자"고도 했다.

남북이 평화 공존 협력 시대로 들어서면, 북핵은 남북 공동, 즉 민족의 자산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니 북한 비핵화만 너무 고집하지 말고 큰 틀에서 교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참석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경제력과 북의 핵을 결합한다'는 발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일부 지식층에 이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외침과 망국의 역사를 가진 한국민이 강하고 풍요로운 통일국가를 꿈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청와대의 소위 '자주파' 비서 진영까지 이런 꿈을 꾼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북한 핵이 민족 핵'이란 논리를 만들고 선전해온 주체는 평양 정권이다. 지난 1월 25일 북한 통일전선부가 발표한 '해내외의 전체 조선 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 민족이 틀어쥔 핵 보검은 미국의 핵전쟁 도발 책동을 제압하고 전체 조선 민족의 운명과 천만년 미래를 굳건히 담보해준다. 민족의 핵, 정의의 핵 보검을 북남 관계의 장애물로 매도하려는 온갖 궤변과 기도를 단호히 짓부셔 버리자." 이 호소문의 '민족 핵' '핵 보검'은 곧 '남 경제력과 북핵을 합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주장과 같은 얘기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북의 달콤한 '선전'이 위험한 것은, 그 속에 치명적 함정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핵은 북한 주민이나 정부의 핵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김정은의 핵이고 모든 정보는 비밀이다. 남북 관계가 풀린다고 해서 김정은이 핵 통제권이나 정보를 한국과 공유할 리 만무하다. 북한 핵이 결코 민족 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북핵이 민족 핵'이란 선전은 '북에 강한 비핵화 압박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 즉 북한이 '부분 비핵화' 혹은 '위장 비핵화'로 국제사회를 속일 가능성이 있더라도, 판을 깨지 말고 대북 제재를 해제해 신뢰를 쌓는 것이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비핵화 검증보다 대북 제재 해제와 군사 대결 해소에 더 적극적이다.

한국 정부의 이런 성급한 행동은 장차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시설 폭파와 해체 등 '비핵화 쇼'를 통해 트럼프의 11월 중간선거를 도우면, 미국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평화협정은 곧 미군 철수를 불러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총 한 발 못 쏘고 김정은의 '숨겨둔 핵 무력' 앞에 무릎 꿇는 길밖에 없다. 그런 날이 오면, 지난 70여 년간 우리가 이룩한 경제 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인권, 사상·종교·언론 출판의 자유, 자녀의 미래, 연금과 저축까지 통째로 날아가버린다. 한마디로 '국가의 자살'이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란 4·27 판문점 선언을 그대로 믿고 싶다. 그러나 북의 '평화 공세'에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역사적 7·4 남북공동선언도 한국을 미·일(美日)로부터 떼어내기 위한 북한의 의도적 '평화 공세'였다(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61~62쪽).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때도 북은 몰래 핵 무력을 강화했다.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까? '북한 핵이 민족 핵' 되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강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북핵에 굴종하는 세상이 올 뿐이다. 5000만 한국민은, 지금의 북한 주민처럼, 김정은 폭압 체제에 말 한마디 못 하고 머리만 조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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