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불가피"..김경수 도정 본격 출항 앞두고 표류?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7일 새벽 서울 강남구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3일 ‘드루킹 특검’ 소환을 앞두고 “특검은 제가 하는 일과 고민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 김해시 주촌면 한 경로당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를 방문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김 지사는 또 “(지금은)경남 도민의 민생을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도)도정을 한 치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덧붙였다. 과연 그가 했던 약속은 지켜질까.

김 지사는 지난 6일 특검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재소환, 구속영장 발부나 기소 여부, 재판 등 각종 절차가 남아 있어 과연 김 지사의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런 반문이 나온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 공작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허익범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지지자들의 꽃세례를 받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1일 취임한 김경수 도정은 다음 주부터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30일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 실장이 경제부지사(현 서부부지사로 이달 중 명칭 변경 예정)로 취임했다. 경제부지사 자리는 김경수 도정이 표방한 ‘완전히 새로운 경남’을 이끌어갈 가장 핵심적인 자리다.

취임사하는 문승욱 경남도 경제부지사. [연합뉴스]

경남도 경제 관련 부서인 미래산업국과 경제통상국 등을 관할하면서 김 지사가 가장 앞세우는 침체한 경남 경제 혁신을 주도해 나가야 하는 자리여서다. 또 경제부지사와 함께 도정을 진두지휘해 나갈 행정부지사 자리도 다음 주 13일쯤 박성호 행안부 지방 행정정책관이 임명될 예정이다. 명희진 정무특보 등 김지사를 측근에서 보좌할 자리도 대부분 채워졌다. 지난달 말에는 첫인사도 있었다.

다음 주 16일쯤에는 김경수 도정의 나침반이 될 ‘새로운 경남, 도정 4개년 계획’도 나온다. 지난 1일 경남발전연구원에서 경남도정 인수위원회인 ‘새로운 경남위원회’의 도정 4개년 계획 최종 보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여기서 김 지사의 도정 철학과 방향을 담은 3대 목표, 12개 전략, 46개 과제가 제시됐는데 수정과정을 거쳐 이날 도민에게 최초로 내용이 공개된다. 사실상 김경수 도정이 준비를 마치고 공식 출항 절차만 남겨 놓은 셈이다.

김경수 지사가 도민으로부터 정책제안을 받아 도정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경남1번가' 개소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 김경수 당선인 사무실]

그런데 김 지사가 드루킹 특검 소환 조사를 받고 앞으로도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면서 도정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남도청 국장급 한 고위간부는 “사실상 인사와 정책 준비를 마치고 공식 출항을 앞둔 상황인데 드루킹 특검 소환 등으로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며 “공무원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도정 공백이 발생할 수는 없겠지만, 심리적인 동요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드루킹' 김동원 씨의 댓글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지난 2일 오전 김경수 경남지사 집무실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런 심리적 동요는 김 지사도 마찬가지다. 김 지사의 구속 혹은 기소 여부에 이어 재판까지 이어질 경우 김 지사가 초창기에 공언한 대로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다. 실제 홍준표 전 지사도 성완종 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유죄를 받은 뒤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재판이 계속되면서 자신의 시간 상당 부분을 재판 준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도정과 자신의 재판에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공무원들도 수장의 재판 기일 등에 맞춰 업무보고 등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신동근 경남도청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지사에게 업무보고 할 일이 있어도 재판이나 소환 등이 있는지 먼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드루킹 민주당원 댓굴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허익범 특별검사팀 관계자들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김경수 경남지사가 사용하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사용하던 사무실은 현재 김정호 의원이 사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서는 김경수 도정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전임 도정과 완전 차별화된 대형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 입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가운데)가 기자들로부터 드루킹 댓글 의혹에 관한 질문을 받으며 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 자치단체장은 어쨌든 4년 동안 집권한다는 전제하에 정책을 만들고 그걸 도민들에게 알려서 집행해 나가는데 지금처럼 피의자 신분으로 무언가를 추진하게 되면 도민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들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롭게 추진되는 사업에 대해 적극성을 가지기 힘들고 도민들도 크게 호응하기 힘든 만큼 서민 생활과 관련된 기존 일자리 창출 등의 사업은 지속하면서도 전임 도정과 완전히 다른 대형 예산 사업은 당분간 추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