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산과 애민주의적 융복합, 그리고 드론

안의식 기자 2018. 8. 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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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성 한국드론산업협회 고문
설동성 (사)한국드론산업협회 고문
[서울경제] 다산 정약용. 정조를 도와 조선 후기 개혁을 이끈 정치사상가이다. 계몽군주인 정조와 개혁사상가인 다산의 만남은, 조선 후기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정조가 없는 다산, 다산이 없는 정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두 사람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다. 하지만 정치개혁, 사회개조가 무엇이고 얼마나 힘든 일인지,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다산은 정치개혁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공학도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창의적인 공학정신은 그의 사상적 텃밭인 실학에서 나왔을 것이다. 더 깊게는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자양분이지 않았을까. 요즘 화두인 인문사회과학과 공학의 융복합을 200여년 전에 다산은 이미 실천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유럽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하지 않던가.

다산의 창의적 공학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거중기이다.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데 쓰이는, 요즘 말로 하면 수동식 크레인이다. 다산은 거중기를 18세기 말 수원화성 공사에 투입했다. 당시 이렇다 할 건축기계가 없는 상황에서, 성 쌓는 공사를 할 때마다 백성들은 무거운 돌을 들어 나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공사기간도 무척이나 길었다. 따라서 거중기는 백성들의 고생도 덜어주고 공사기간도 단축시켜주는 등, 다산의 애민정신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2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다산의 사상을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그 중에서도 드론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둘의 공통점은 창의성과 융복합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의 사고와 사상은 도무지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뻗어나갔다.

드론 역시, 활용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드론이 비군사용, 즉, 산업용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이제 겨우 10년 남짓. 그 사이에 드론은 양적, 질적으로 급속도의 성장세를 보였다.

다산의 거중기는 당시 공사장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을 것이다. 요즘 건설현장에서는 드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공사의 진척도를 한눈에 보여주고, 공사 현장의 각종 문제점을 즉각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다산시대 공사현장에서의 거중기와 21세기 건축현장에서의 드론.

하지만 한국에서의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이 다산에 못 미치는 것이 있다. 다산에 배워야할 점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바로 애민정신이 아닐까? 다산 사상에 애민이 없었다면 관료적 지식인의 사회개혁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애민이 있었기에 다산 사상은 인본적 사회개혁으로 승화했다. 한국에서의 드론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을 보자. 성과 위주의 산업적, 물질적 측면에 치중하고 애민이 부족한 듯한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19세기가 시작한 1800년, 정조가 생을 마치면서 다산의 공적 활동도 멈췄다. 19세기는 서구에서 근대화와 산업화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물론 유배지에서 다산의 저술활동은 더 왕성해졌지만, 다산의 연구물이 조선사회에서 실천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조의 죽음과 다산의 퇴진이 더욱 아쉬워지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고 하지만, 정조와 다산의 개혁이 좀 더 지속됐다면 조선은 어떻게 됐을까? 조선 근현대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이 시대의 화두인 듯 하다. 드론도 유행의 바람을 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창의성과 융복합성이다. 다산은 200여년 전,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전근대적 조선사회의 선각자이자 이단아였다. 그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인 융복합(Convergence)적 사고, 분야를 넘나드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통섭(Consilience)의 이론가이자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 바탕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다산의 애민주의적 융복합형 사고가 다시금 그리워지는 것이 필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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