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대 '여성=남성 5수생' 20점 감점 성차별

서승욱 2018. 8. 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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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공백, 나이 들수록 이직도 많아"
여성 덜 뽑으려 2006년부터 조작
전국 의대 조사 예고, 파문 커질 듯
유키오카 데쓰오 도쿄의과대학 상무이사와 미야자와 게이스케 학장직무대리(왼쪽부터)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사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 수험생과 5수생 이상 남성 수험생은 20% 감점’

7일 발표된 도쿄의과대학(도쿄의대)의 입시 부정에 대한 조사 결과 보고서 내용이다. 1916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신주쿠(新宿)구의 명문 사립 의과대학은 보고서 속에선 ‘여성 차별의 온상’이었다.

이 학교의 입시는 객관식으로 실시되는 400점 만점의 1차 시험, 소논문(100점 만점)과 면접으로 진행되는 2차 시험으로 구성된다.

2018년도 입시에서 여성에 대한 감점은 2차 시험 채점에서 이뤄졌다. 2차 소논문 평가에서 수험생들의 점수에 0.8을 곱한 뒤 ▶현역(고3)이거나 재수·삼수생인 남성 수험생에게는 20점을 더했고 ▶이어 4수생 남성에겐 10점을 가산했다.

하지만 여성 수험생과 5수생 이상 남성 수험생에겐 가산점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과 5수생 이상 남성들은 논문평가에서 만점(100점)을 받더라도 실제로는 80점만 얻는 결과가 됐다. 여성 수험생들에겐 가혹했던 이 학교는 지난해와 올해 문부과학성 현직 국장의 아들을 비롯한 수험생 19명에게는 1차 시험에서 점수 8~49점을 얹어줬다. 대학에 대한 기부금 등을 기대하고 유력 인사들의 자제에게 ‘뒷문 입학’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차별 점수조작은 당초 알려졌던 2011년보다 5년이나 빠른 2006년 입시 때부터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장시간 근무가 어렵고, 이직률도 높아 대학병원 운영 등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여성 합격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배경엔 일본 의학계의 뿌리 깊은 남성우위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여성 의사의 이직률이 높은 건 자녀교육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일본 의료계는 그 책임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 신문도 “외과엔 여성 의사는 필요없다는 등 공공연한 차별이 의료 현장에선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쿄의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의 의과대학들 중에서는 전체 수험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여성 합격률이 현저하게 낮은 학교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문부과학상이 “전국의 국공사립대 의학부와 의학과를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파문은 일본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

도쿄의대를 지망했다 탈락한 수험생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2011년 2차 시험에서 불합격했다는 한 여성은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도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라며 “부모님이 ‘아들이 아닌 딸로 낳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실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감점 때문에 탈락한 이들을 추가로 합격시키거나 배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여성 수험생 감점 방침을 미리 공지하지 않았던 만큼 탈락한 여성 수험생에 대해 학교 측의 법적 배상책임이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인터넷에는 “불합격한 여성 수험생이 다른 학교에 지불한 학비와 재수학원 수업료, 정부로부터 받은 국고보조금까지 뱉어내야 한다. 학교 측의 부담이 최소한 120억엔(약 12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올라오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연거푸 터지고 있다. 스모 경기장 모래판에 여성은 올라갈 수 없다는 전통을 지키느라 기절한 사람을 응급처치하던 여성들이 모래판에서 쫓겨났다. 또 “가슴을 만지고 싶다”며 여기자를 성희롱한 재무성 사무차관을 정치인들이 두둔해 논란이 일었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미투 운동도 유독 일본만 비켜났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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