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알아본]'졸속 행정'이 빚은 일회용컵 실랑이..눈물은 가맹점주 몫

이선애 2018. 8. 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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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고민한 과태료 부과 기준…여전히 모호
현장은 혼란…가맹점주에만 책임 불만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여부에 대한 단속이 시작된 2일 서울 종로구청 일회용품 규제 단속 공무원이 관내의 커피전문점을 찾아 점검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지난 2일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컵 사용 단속이 시작된 이후 현장 곳곳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카페 곳곳에 지자체 단속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가맹점주들은 피가 마를 지경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혼란이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는 점입니다. 기자가 2일부터 8일까지 만난 서울 시내 주요 커피전문점 50여곳의 가맹점주들은 하나 같이 환경부의 보여주기식 '졸속 행정'이 만든 '혼란'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대충 만들어 놓고 자랑하기에만 바빴는데 혼란은 당연한 결과라는 하소연까지 들었습니다. 이 같이 토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작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환경부는 지난 5월10일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 등을 사용하면 음료가격의 10%를 할인해주는 내용에 대해 20여곳의 업계와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 사실과 달랐습니다. 당시 업계는 공문만 전달을 받았고, 논의나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하물며 자발적 협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는데 체결한 업체로 거론이 돼 당혹스럽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환경부는 대책 발표 다음날인 5월11일 환경공단서울사무소에서 20여개 업체 실무자들을 불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발적 협약에 참여해 5월 말까지 체결식을 해야한다고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야말로 '선 발표·후 압박'인 셈이죠.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A 커피전문점 가맹본부 관계자는 "불러 놓고 진행한 자발적 협약에 대한 설명은 결국 강제적으로 동참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고, 참여하지 않을 경우 일회용컵 사용금지 등의 불이익이 있다는 소리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참여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 내부 모습.

환경부의 보여주기식 정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초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면 가격의 10%를 할인해준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협의 되지 않았던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10% 이하의 금액을 할인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면서 환경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죠.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이후 환경부의 '자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동시에 가맹점주들의 혼란도 시작이 됐습니다. 환경부는 8월1일 일회용컵 사용 과태료 부과를 앞두고 6월20일부터 7월 말까지 현장 계도 및 홍보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기간 동안 커피전문점은 그야말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환경부와 자발적 협약을 맺은 곳의 경우 일회용컵을 사용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 지자체는 '사용 금지'로 해석해 수시로 찾아와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자원재활용법 제10조에 따르면 일회용품 사용은 금지가 아니라 '사용 억제'입니다. 특히 시행령 제8조에 따르면 사업자가 일회용품을 스스로 줄이기 위한 협약을 환경부장관과 체결해 이행할 경우 일회용품을 사용하거나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자발적 협약을 맺은 업체의 경우 일회용컵을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 금지'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면 과태료를 부과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무조건 '사용 금지'라고 외치며 과태료를 부과 받으니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지난 7월17일에 만난 B 가맹본부 관계자는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컵 사용이 불법은 아니고, 자발적 협약을 맺은 커피전문점의 경우 일회용컵을 사용해도 되는데 지자체는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며 "법 해석도 잘못하고 있고, 점검 기준이 무조건 '사용 금지'에 초점을 두는 등 모호해 현장은 혼란 그 자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업계 불만이 고조되자 환경부가 지난 7월20일 다시 실무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업계의 불만과 혼란이 고조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리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이날 간담회도 보여주기식에 그쳤다는 게 업계 참석자들의 전언입니다. 업체의 불만과 요청을 듣고도 환경부가 애매모호한 답변만 되풀이한 채 해결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C 가맹본부 관계자는 "환경부의 정확한 지침을 기대하고 참석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전혀 없었다"며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는 자발적 협약 업체들을 단속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지만 환경부는 입을 닫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D 가맹본부 관계자는 "매장내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고객의 비율을 본다면서도 비율 기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회색구역(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 구역)이 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답을 늘어놨다"며 "고객에게 머그컵 사용을 권유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받는다고 강하고 진전성있게 해야 한다는 답변만 내놨다"고 꼬집었습니다.

환경부의 황당한 지침도 논란이 됐습니다. E 가맹본부 관계자는 "직원 권유에도 매장안에서 먹는데 계속 일회용컵 사용을 원하는 고객은 나가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환경부가 얘기했다"며 "업계 현실을 모르는 얘기로 장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을 찾은 한 고객이 일회용컵 대신 머그잔을 이용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이런 상황에서도 8월이 시작됐습니다. 환경부는 1일부터 단속을 벌일 예정이었지만 업계 불만을 감안해 공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느라 단속을 하루 늦췄습니다. 지자체별로 일회용 컵 규제 기준이 달라서죠. 하루 늦은 2일부터 단속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기준은 모호했고 예상대로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환경부는 일회용품 사용 점검 시 일명 ‘컵파라치(일회용품 컵 사용 사진 제보)’를 통한 과태료 부과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점검 과정에서는 ▲적정한 수의 다회용컵(머그컵 등) 비치 여부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불가 고지 여부 ▲소비자의 테이크아웃 의사 표명 여부 등을 확인토록 했습니다. 현장 점검에서 규정 준수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정된 사업주에게는 5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서울의 투썸플레이스 한 매장에 비치되어 있는 일회용컵 사용금지 포스터.

하루 고민한 기준은 역시 모호할 수 밖에 없죠. 머그컵을 어느 정도 비치했느냐를 점검할 땐 '적정한 수의 다회용컵 비치 여부' 가 기준이 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가맹점주는 "점검 시 머그컵의 적정 수량 기준이 단속반의 주관적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크다"며 "머그컵을 둘 공간도 없어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 변경까지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다른 가맹점주는 "머그컵 권유에도 강하게 거부하는 고객이 많고, 잠깐 앉았다 나가니 일회용컵에 달라고 하고 한 시간 이상 앉아있는 손님도 있는데 그때 지자체가 단속을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일회용컵 사용을 고집하는 손님을 설득시키느라 주문 시간이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라면서 "모든 책임을 가맹점주에게만 묻는 것은 너무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과태료 부과 기준이 모호한 상황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결국 단속을 나온 당시 공무원의 마음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이란 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하루 고민한 '새로운 지침'이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회용품 줄이기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가맹점주만 밀어붙이는 단속이 아닌 일회용품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모두의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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