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수사반장] "백만원짜리 짝퉁시계, 환불이 안돼요" 민원 한줄로 뇌물공무원 검거

박성우 기자 입력 2018.08.10. 14:36 수정 2018.08.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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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스토리에서 버젓히 짝퉁 시계를 판매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불법인 것 같은데 수사해주세요.”

지난 1월 국민신문고에 경찰 수사를 요청하는 민원(民願)이 하나 올랐다. 짝퉁 시계를 구입한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했지만, 판매자 측에서 환불을 거부하자 화가 난 소비자가 업체를 신고한 상황. 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부산 해운대경찰서로 전달됐다. 자주 있는 흔한 민원 중 하나였다.

부산 해운대경찰서가 8일 중국산 가짜 명품시계를 수입해 시중에 유통하도록 한 혐의(상표법 위반 등)로 밀수입 총책 이모(38) 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운송총책 강모(40) 씨와 관세청 공무원 이모·김모 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에 적발된 짝퉁 시계. /해운대경찰서 제공

해운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강진희 경위(50)는 이걸 달리봤다. 최근 모바일메신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짝퉁 명품 시계가 유통되고 있다는 첩보(諜報)를 인지한 터라, 수사를 해보면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감(感)이 있었다.

강 경위는 우선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짝퉁 시계 판매 사이트를 비롯, SNS를 통해 광고 중인 여러 업체를 조사해 운영자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소매업자인 이들말고 상위 공급책이 있었다. 경찰은 소매업자의 증언과 휴대전화, 계좌 조회 등을 통해 중간판매책 3명을 신원을 확보했다.

이들은 지난 2016년부터 최근까지 경기도 최고급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이용하면서 전국 소매업자들에게 짝퉁 시계를 공급해왔다. 경찰은 오피스텔 주변을 일주일 가량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남자 3명이 살고 있는 호수를 찾아내 중간판매책을 검거했다.

압수된 가짜 명품 시계. 정품은 최소 1000만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해운대경찰서 제공

하지만 수사를 진행하다보니 중간판매책도 ‘몸통’이 아니었다. 이들도 일주일에 2~3회씩 유통총책 김모씨로부터 짝퉁 명품 시계를 공급 받는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짝퉁 시계 수입·유통 조직에서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 김씨 위에는 이른바 ‘나사장’으로 불리는 조직의 총책 이모씨(38)가 존재했다.

이씨는 김씨를 비롯해 운송총책 강모씨, 판매총책 최모씨, 자금관리 이모씨 등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 짝퉁 명품시계 수입 유통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짝퉁 시계를 보관하는 물품창고까지 보유하고 있는 그야말로 짝퉁 시계 업계의 ‘큰 손’.

중간판매책과 유통조직은 철저하게 대포폰만 사용하고 현찰로 거래를 해서 서로의 존재를 숨기고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중간판매책은 물건을 운송해주는 사람의 얼굴만 알 뿐, 신원정보를 전혀알지 못했다. 그 윗선은 ‘나사장’과는 당연히 면식이 없었다.

경찰은 중간판매책의 대포폰 통화내역을 조회해 ‘나사장’ 이씨 등 총책들의 신원을 좁혔다. 특히 “작년에 OOO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이 기간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 사진을 대조해 ‘나사장’의 신원을 특정, 서울 장안동 자택에서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 일당은 까르띠에 드라이브 드 뚜르비옹(정품 약 1억5000만~2억4000만원) , 롤렉스, IWC 등 해외 명품시계 상표가 부착된 20여 종의 시계 3700여점을 밀수해 국내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품가격으로는 약 2500억원에 이른다.
정품 가격이 어마어마하니 ‘짝퉁’ 가격도 개당 80만~100만원이었다. ‘나사장’은 인터넷과 SNS로 978점, 총 3억4615만원어치를 팔았다.

여기까지만 놓고보면, 이번 사건은 상표권위반 혐의로 끝날뻔 했다. 하지만 경찰은 또다른 중간공급책 진술에 주목했다. 한 중간공급책은 경찰조사에서 “나사장을 한번 만나 술을 마시며 ‘어떻게 세관에 걸리지 않나’ 물었더니 (나사장이) 뒤를 봐주는 세관이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해운대경찰서 강진희 경위 /해운대경찰서 제공

경찰은 ‘나사장’의 대포폰을 뒤져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물류업체 대표를 찾아냈고, 이 과정에서 관세사와 세관 공무원과의 연결고리도 발견했다.

‘나사장’ 이씨가 중국 조선족 판매상에게 가짜 명품시계를 주문하면 안모씨 등 통관대행업체는 국내 통관에 용이하게 짝퉁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작업을 했고, 관세사인 조모씨가 수입신고서를 작성해 통관되도록 하는 수법으로 짝퉁 명품시계를 밀수입한 것이다.

물류업체 대표 안씨가 세관 공무원들에게 돈을 입금한 증거도 발견됐다. 세관 공무원 A씨는 안씨로부터 뇌물수뢰 혐의를, 다른 공무원 B씨는 화물 정보를 검색하는 핵심 부서인 화물정보분석과의 명단과 업무 분장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관세법 등을 위반한 사례가 없는 수입업체를 이른바 ‘화이트 사업자’로 구분해 별도의 조사 없이 서류상 통관만 거친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이씨가 주문한 물품을 안씨 등이 들여오면 관세사 조씨가 수입업체와 품목, 수량 등을 조작해 수입신고서를 작성하고 공무원들이 이를 묵인하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규모 가짜 명품시계 수입, 유통조직 연결표 ./해운대경찰서 제공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중국산 가짜 명품시계를 유통시킨 혐의(상표법 위반 등)로 총책 이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운송과 유통 등을 도운 일당과 관세사, 수입물류업체 대표 등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의 범행 전반을 도운 세관 공무원 2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한 조직의 계좌와 유통망 추적을 통해 전국의 도·소매상을 비롯해 비슷한 수법의 밀수입 업자들, 통관 협조자, 중국 거주 공급책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들이 수입신고 없이 밀수입한 관세포탈 협의 등에 대해는 추가로 관세청에 고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