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도, 오늘도 껴입어야 하는 여성들
[오마이뉴스 조윤진 기자]
▲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 |
ⓒ EBS 클립뱅크 |
옷 입는 것도 귀찮아…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사상 역대급 무더위", "사람 잡는 불반도", "내일은 더 올라"… 폭염이 연일 기승이다. 5분만 밖에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불쾌해지는 날씨. 옷을 사러 가면 최대한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안 걸친 것 같은' 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화장품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 소비자들은 무거운 느낌의 파운데이션보다 가볍게 잘 발리는 파운데이션을 선호한다. 화장품 회사 역시 이러한 선호에 맞춰 각종 섬머 코스메틱 상품을 내놓는다. 모두가 함께 폭염에서 살아남기를 꾀하는 셈이다.
A씨의 사연 : "그래도 브래지어는 해야지"
모두가 어떻게든 한 겹이라도 덜 걸치려고 하는 폭염 속, 여대생 A씨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A씨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 아르바이트에 갈 준비를 한다. 휴대폰엔 폭염경보 문자가 와 있다. 문자를 보며 A씨는 얇은 반팔과 통풍이 잘되는 치마를 입기로 한다. A씨는 가슴에 딱 맞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후, 얇은 반팔을 입는다. 다리에 딱 붙는 속바지를 입은 후, 통풍이 잘되는 치마를 입는다. 헤어드라이어, 고데기에 화장까지 하려니 나가기도 전부터 땀이 나지만 안 할 수는 없다. 준비를 마친 A씨는 집을 나선다. 밖은 폭염경보가 발령된 상태다.
39도의 불볕더위 속,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는 답답하고, 계속 땀이 찬다. 속바지는 땀에 말려 올라가 살갗을 쓸어서 따갑다. 통풍이 거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얼굴에선 땀이 나서 화장이 계속 지워지지만, 아예 지울 수는 없다. 수시로 수정화장을 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아무리 여름용 속옷, 여름용 화장품이라 해도 더 나아질 건 없다. 겹겹이 껴입은 상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온도가 아무리 올라도 여성을 향한 사회적 검열과 억압은 그 꺼풀을 벗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
ⓒ 고함20 |
B씨의 사연 : "저도 모르게 제 모습을 검사해요"
또 다른 여성 B씨는 최근 브래지어를 안 하고 외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은 편해졌어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뭐 어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봤을 때 가슴 윤곽이 드러나 있으면, 다니면서 시선을 받진 않았을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지인에게 노브라로 다니다가 성추행을 당할 뻔했단 이야기를 들은 B씨는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B씨는 혹시 윤곽이 비치는 옷을 입지는 않았는지 한 번이라도 더 가슴을 내려다보게 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 pixabay |
ⓒ pixabay |
여성의 신체적 구속을 향한 사회적 억압과 제재는 여전하다. 용기를 내어 구속을 벗어나더라도, 시선과 자기검열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힘든 현실이다. 여성에게 씌워진 사회적 시선과 강요는 개인이 '나는 여자들이 그러든 말든 상관 안 하는데?',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라고 생각한다 해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브래지어를 입을 권리, 화장을 할 권리가 온전히 개인의 자유와 선택으로 남기 위해선 브래지어를 입지 않을 권리, 화장하지 않을 권리도 '정상적인 것'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청년언론 <고함20>에서 발행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자라는 이유로 몸이 시들어가는 당신께
- 제주서 "여성 23명 죽이겠다" 괴전단지 작성자 잡고보니..
- 베트남 이주여성도 놀란 한국 '시집살이'
- '싸움판' 깔아준 아빠, 두 딸은 링 위에 올랐다
- '라면'과 '헝그리 정신'이 임춘애와 김연아 만들었다고?
- 검찰조사 받다 특종 건진 기자 "이건 조직범죄, 내가 다 찍었다"
- 4년 전 쓴 '김대중 칼럼'을 되돌려준다
- '뉴스킹' 하차 박지훈 "정말 편파적으로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 [영상] 불편한 나경원 "아니, 이재명 대표는 왜 자꾸 동작에 오는 거예요?"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박정희 동상 만들어 그 앞에 절하면 경제 발전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