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똑같이 에어컨 펑펑 썼는데.. 가정집 전기료 26만원, 가게는 15만원

권승준 기자 입력 2018. 8.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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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실험실] 가정집에만 가혹한 누진제, 3주간 24시간 에어컨 써보니..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가정의 전기요금 걱정은 깊어진다. 기자는 올여름 신생아 때문에 3주 넘게 24시간 에어컨을 켜고 지냈다(왼쪽 사진). 20만원이 훌쩍 넘는 ‘요금 폭탄’을 맞았다. 하지만 상업용 전기를 쓰는 가게들은 비슷한 양의 전기를 쓰더라도 훨씬 적은 요금을 냈다.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서다. 일부 가게는 거리낌 없이 개문 냉방(오른쪽 사진)을 한다./권승준 기자·뉴시스

매년 한반도의 보통 가정들은 폭탄을 맞는다. 폭탄의 이름은 전기요금, 폭탄의 뇌관은 에어컨이다. 최근 몇 년간 점점 더 심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에어컨이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면서 이 폭탄의 화력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인터넷엔 "매일 밤 견딜 수 없어서 에어컨 몇 시간 틀었을 뿐인데 수십만원짜리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식의 호소가 넘쳐난다. 실제로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금액이 부과되는 누진제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여름에 에어컨을 남용(?)했다가 전기요금이 40만~50만원씩 나오는 사례도 나온다. 여름은 더위로 인한 고통과 돈 걱정까지 겹친 이중고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폭탄 걱정 없이 에어컨을 만끽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다. 도시 번화가에서 가게 문을 연 상태에서 에어컨 틀고 영업하는 상인들이다. 소위 '개문(開門) 냉방'이라고 불리는 이런 업태는 무더위에 시원한 바람으로 손님 발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영업 전략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개문 냉방은 전력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후 매년 여름이면 당국에서 개문 냉방 자제를 권고하고, 상황이 심각할 때는 과태료까지 부과하며 단속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웬걸. 폭염과 함께 개문 냉방은 대성황이었다. Why?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명동 관광 특구 일대를 취재해보니, 총 88개의 가게 중 70곳이 개문 냉방을 하며 영업 중이었다. 6월부터 개문 냉방 중이라는 한 업소의 종업원은 "전기요금 아끼려다가 손님 끊기는 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정과 자영업자들의 이런 격차는 누진제 때문이다. 가정용 전기와 달리 상업용(일반용) 전기요금은 기본 요금은 더 비싸지만 누진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많이 써도 동일한 비율의 요금(kWh당 105.7원·갑종 저압전력 기준)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이나 겨울철엔 같은 양의 전기를 써도 가정용 전기요금이 더 비싸게 나오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최악의 폭염이 덮친 올해 여름, 이 전기요금의 역설을 Why?가 검증해 봤다.

상업용 전기 두 배 써도 가정용과 요금 비슷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 중순, 마침 검증을 하기 좋은 자연 실험 기회가 생겼다. 기자가 여름철 전기요금 폭탄의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전에는 에어컨 없이 잘 버텼다. 하지만 올해 여름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24시간 동안 에어컨을 돌렸다. 신생아를 위해 집 안 실내 온도를 24~25도 정도로 항상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7월 22일부터 3주간 하루 24시간 스탠드형 에어컨을 켰다. 중간에 10~20분씩 가동을 멈춘 시간을 다 합쳐도 2시간을 넘지 않았다. 10분만 가동을 중지해도 실내 온도가 27~28도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에어컨뿐만이 아니었다. 수건이나 속싸개 등 매일 나오는 아기 세탁물 때문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하루 1~2회씩 돌리는 건 기본이었다. 거기다 분유 온도를 맞추기 위한 전기포트나 젖병 소독을 위한 적외선 소독기도 하루 몇 번씩 가동해야 했다. 이렇게 원 없이 전기를 펑펑 쓰면서 한 달을 살다가 검침일이 다가오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에 설치된 계량기로 측정한 결과 지난 7월 9일부터 한 달간 사용한 전력은 약 980kWh(킬로와트시). 한국전력에서 제공하는 전기요금 계산기를 돌려보니 한 달 전기요금으로 25만7280원이 찍혔다. 출산 가구에 적용되는 전기요금 할인(최대 1만6000원)과 지난 6일 정부가 내놓은 올여름 전기요금 완화 대책의 혜택을 본다고 해도 20만원 안팎의 금액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한 달간 기자와 비슷한 양의 전기를 쓴 서울 시내 가게 3군데를 취재해봤다. 세 가게 모두 하루 14~16시간 정도 에어컨을 켜고 있었고 그중 한 곳은 하루 3~4시간씩 개문 냉방을 했다고 밝혔다. 세 곳은 지난 한 달간 970~1000kWh의 전기를 썼는데 전기 요금은 약 14만4500~14만8000원가량이 나올 것으로 계산됐다. 기자보다 11만원가량 요금이 덜 나온 것이다. 한전의 전기요금 계산기로 추산해보니 이 가게들은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전기(1800kWh)를 써야 요금(약 24만4000원)이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정용 전기 두 배 쓰면 요금은 2.5배 늘어나

물론 이런 비교 결과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저압·고압용만 있는 가정용 전기와 달리 상업용 전기는 갑1·2종과 을종 등 3가지 종류가 있고 종별로 전기요금 차이가 큰 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전력을 많이 쓰면 쓸수록 가정용 전기요금이 상업용 전기요금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표준적으로 계약하는 갑1종 상업용 전기를 쓰는 곳은 대략 420~430kWh를 기점으로 가정용 전기와 상업용 전기요금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취재한 가게 3곳도 모두 갑1종으로 계약한 곳이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4인 가구의 여름철 평균 사용 전력은 약 350kWh인데, 여기에 스탠드형 에어컨(소비전력 1.8kWh)을 하루 3시간씩만 틀어도 전력 사용량은 약 510kWh까지 늘어난다. 여름철이면 많은 가정이 비슷한 양의 전기를 쓰는 가게들보다 전기요금을 많이 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때문이다. 가정용 전기는 기본요금은 싸지만, 많이 쓰면 쓸수록 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가정용 저압전기를 한 달에 500kWh를 쓰면 요금이 10만4000원가량인데, 1000kWh를 쓰면 26만3600원으로 2.5배 이상 늘어난다. 반면 상업용 전기는 기본요금은 가정용에 비해 비싸지만 많이 써도 요금은 사용량에 비례해 늘어난다. 갑1종 상업용 전기를 쓰는 가게가 한 달에 1000kWh를 쓰면 요금이 8만8000원 나오지만 2000kWh를 쓰면 14만8100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문 냉방을 억제하기 위해서 단속 같은 행정적 규제가 아니라 요금 제도로 개문 냉방을 할 유인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누진제로 개문 냉방을 하는 가게들에 불필요한 전력 낭비로 인한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논리다.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전기요금 누진제의 원래 취지는 전기 낭비를 억제하는 목적도 있지만, 전기 사용이 적은 저소득층을 배려하자는 취지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누진제는 1~2인 가구에 비해 4인 이상 가구의 전기요금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는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전기 사용은 가구원의 숫자에 크게 좌우되는데 지금의 누진제에서는 고소득 1인 가구에 비해 저소득 4인 가구가 더 많은 전기요금을 물게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가정들은 전기를 덜 쓰는 편이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많은 선진국에선 가정용 전기 사용 비중이 전체의 30~40% 수준을 오간다. 하지만 작년 한국은 가정용 전기 소비가 전체의 약 13.3% 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절반 이하였다. 1인당 가정용 전기 소비량을 기준으로 봐도 연간 1274kWh(213년 기준)로 OECD 평균(2324kWh)의 절반 수준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여러 선진국도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택하고 있지만, 최대 1.1~1.6배 수준으로 3배에 육박하는 한국의 전기요금 누진율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누진제 때문에 한국의 가정들이 다른 해외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전기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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