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때린 관세에.."동맹 깨진다" 맞받은 터키

2018. 8. 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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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등 관세 인상 펀치에 터키 화폐 대폭락
경상적자, 인플레이션 맞물려 경제 위기 심화
트럼프, 목사 석방 놓고 터키 경제 급소 찔러

터키 대통령 "우리한테 포탄과 미사일 쐈다"
미국에 NATO 동맹 상실 경고하며 '항전'
"미국에 달러 있다면 우리에겐 알라 있다"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래의 기술>이란 책에서 “거래할 때 최악은 절박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피 냄새를 맡고, 당신은 죽게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피 냄새’를 맡고 리라화를 공격해 터키 정부를 그로기 상태에 빠트렸다.

터키 리라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트위터로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각각 50%, 20%로 2배씩 올린다고 발표하자 18%나 폭락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경제 전쟁”에서 패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불과 1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금융시장을 초토화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한마디와 달러의 힘을 과시한 이번 사건은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의 위력을 보여줬다. 미국은 이미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고, 터키가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 총액은 연간 10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9000억달러(약 1016조원)에 달하는 터키 경제 규모에서는 조족지혈이다. 문제는 터키가 민간 기업 달러 부채와 경상수지 적자 증가로 이미 약점을 노출했다는 점이었다. 이날 폭락으로 리라화는 연초 대비 40% 넘게 가치가 깎였다. <블룸버그>는 터키 경제의 거품, 화폐 가치 하락, 인플레이션 상황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앤드루 브런슨 목사.

터키의 금융 위기를 심화시키고 15년간 이어진 에르도안 정권의 기반까지 흔드는 갈등의 소재는 앤드루 브런슨(50) 목사의 신병 문제다. 터키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미국 시민 브런슨 목사는 신도가 25명에 불과한 복음주의 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2016년 터키 군부의 쿠데타 실패 이후 대대적 숙청 과정에서 기소됐다. 터키 정부는 그가 쿠데타의 배후인 재미 이슬람 성직자 펫훌라흐 귈렌과 연계돼 있을 뿐 아니라 쿠르드족 독립 세력 및 미국 정보기관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무고한 자국 시민을 석방하라고 요구해왔다. 브런슨 목사의 아내는 동료 수감자들이 그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주의 기독교를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출’ 의욕이 타올랐다. 터키 정부는 지난달 26일 그를 감옥에서 내보냈지만 가택연금을 유지해 미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달러 패권’ 앞에 터키가 불리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인이 지닌 달러, 유로, 금을 은행에 내놔 리라화 방어에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체면 때문에라도 무릎을 꿇기가 어렵다. 그는 11일 연설에서 “터키는 그들이 강요하는 환율, 금리,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서 금방 벗어날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또 “달러, 유로, 금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총알, 포탄, 미사일이 발사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전날에는 “그들에게는 달러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알라(신)가 있다”고 했다.

달러를 무기로 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 동맹이라는 터키의 전략적 가치로 맞서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들으라.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들은 목사 한 명과 전략적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맞바꾸려 한다”며 “위협으로 우리를 길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도 “경멸과 일방주의의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새 친구와 동맹을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 동맹’은 러시아, 중국, 이란 등 미국과 적대적이거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쪽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러시아나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러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2차대전 말부터 미국의 군사 동맹인 터키는 유럽, 러시아, 중동을 옆에 낀 지정학적 요충국이다. 미군은 터키에 배치한 공군기지에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터키는 미군이 중동에서 벌이는 여러 작전의 발진 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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