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인들 빚 떠안은 채 폐업 속출..경제 완충지대 '흔들'

안용성 입력 2018. 8. 12. 18:07 수정 2018. 8. 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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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퇴직자들 쏟아져 공급 과잉 / 근로자 중 자영업자 비중 25.5% / OECD국가 가운데 네 번째로 높아 / 작년 영업 잉여 13%.. 최저 수준 / 연소득 1000만원 이하 25% 달해 / CSI 79.. 봉급자보다 12P나 낮아 / "미시적대책 아닌 종합대책 필요"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영업을 “우리 경제의 완충지대”라고 표현했다. 자영업이 임금근로자가 퇴임 후 다시 한 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주요 업권이라는 의미였다. 이 완충지대가 흔들리고 있다. 퇴직 후 자영업에 뛰어든 40∼50대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빚만 떠안은 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재고 정리 세일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상점이 ‘폐점 SALE’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재고정리 폭탄세일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자영업의 위기는 상시적으로 존재했지만 최근엔 위기 지수가 치솟고 있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내수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 각종 수수료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타를 날렸다. 자영업자들이 ‘사(死)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死)중고’에 시달리는 560만 자영업자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수는 568만명 내외로 추정된다. 여기에 관련 종사자까지 포함할 경우 688만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전체 근로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5.5%(2016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자영업 현황을 드러내는 각종 지표는 발표할 때마다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87.9%로, 1년 전보다 10.2%포인트 증가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영업자 폐업의 직접적 이유는 소득 감소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국민소득(국민순처분가능소득)의 22.2%에 달했던 자영업자의 영업 잉여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달 정산금이 전년 대비 40만원 정도 줄었는데, 이 정도는 감소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며 “점주들 모임에서 들어보니 우량 점포를 운영하는 점주들도 정산금이 150만~200만원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난이 심각해지면서 식당이나 술집, 소매점 종사자들의 비자발적 이직도 크게 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음식점 및 주점업의 올해 1∼6월 비자발적 이직자는 4만6563명이었다. 올 상반기 비자발적 이직자 수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9년 하반기 이후 가장 많았다. 음식점 및 주점업의 비자발적 이직자 중 대다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해고 사례일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의 어려움은 체감경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향후경기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를 보면 자영업자 지수는 79에 그쳤다. 이는 봉급생활자(91)보다 12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특히 이 같은 격차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8년 7월 이후 최대폭이다. 경기전망 CSI는 6개월 뒤 경기 상황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는 지표로, 100 미만이면 부정적으로 응답한 가구가 긍정적으로 응답한 가구보다 많다는 의미다.


◆공급과잉·경기 위축 속에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

자영업 위기의 출발점은 ‘공급 과잉’이다. 40∼50대 퇴직자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새 직장을 얻는 사람은 극소수다. 국민연금 수령까지는 10년 이상을 버텨야 하는 현실이다. 그때까지 버텨도 실제 받는 연금액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급자 한 달 평균 수령액은 36만8000원에 그쳤다. 퇴직금을 털어 치킨집을 차리는 퇴직자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소득은 쪼그라들었다. 금융감독원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6년 자영업자의 60%가 연평균 소득이 4000만원을 넘지 못했다. 20%는 한해 1000만원도 벌지 못했다. 자영업의 3년 생존율은 2010년 40.4%에서 2015년 37.0%로 떨어졌다.

자영업에 뛰어든 청년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청년(23∼37세)의 자영업 지속기간은 평균 31개월에 불과했다. 창업 후 2년도 안 돼 폐업하는 경우는 55.3%에 달했다.

자영업자의 삶의 질은 악화일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소상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한 달에 평균 3일 쉬고, 하루에 평균 10.9시간 일했다. 개인 시간은 1.4시간에 불과했다.


경쟁이 치열해도 경기가 좋아지면 자영업자들이 나눠 먹을 파이도 커진다. 그런데 경기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0%대로 결정되자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편의점, 외식업 등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불복 운동이 벌어지는 이유다.

자영업자의 폐업은 가계 부채 문제로 직결된다. 퇴직금이 없는 특성상 즉각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2013년 346조1000억원에서 2017년 549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금융감독원이 추가로 집계하는 할부금융 채무까지 포함하면 598조4000억원까지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 부족으로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저성장으로 소비가 줄면서 자영업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며 “미시적인 대책이 아니라 자영업 실태를 바탕으로 한 종합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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