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겨레 프리즘] '장하성-김동연 갈등'의 이면 / 황보연

2018. 8. 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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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정부가) 삼성에 투자를 구걸하거나 팔비틀기하지 말라.”(청와대 한 관계자)

“기업 투자에 간섭한 적 없다. 경제주체 만나는데 대상 가릴 일 아니다.”(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6일 김동연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을 전후로 이른바 ‘구걸 논란’이 촉발되면서 문재인 정부 경제팀 내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갈등의 당사자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 부총리라는 것은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9일 페이스북에 “(청와대와 정부 내 갈등설의 당사자로부터) ‘(정부가)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을 올리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이번에도 불만을 터뜨린 ‘당사자’는 장 실장으로 지목됐다.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서 개혁그룹과 관료집단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갈등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 정부의 간판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벌여온 신경전이 대표적이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에 주목한 반면에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 취지를 설파하는 데 주력하면서 마찰을 빚어왔다. 급기야 고용과 분배지표가 악화된 것으로 나온 지난 5월을 기점으로 경제정책의 주도권 갈등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갈등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 양상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탓이다. 우선 문 대통령과 청와대 다른 참모진은 이전만큼 장 실장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지 않다. ‘구걸 논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장 실장도 기업인을 비공개로 만나고 다닌다”고 했다. 논란의 본질인 재벌 대기업에 규제를 풀어주고 투자를 유인하는 방식의 행보를 경계하는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만해도 청와대는 “단기적인 경기 대응을 위해 대기업을 압박해온 관행은 되풀이하지 않겠다”(홍장표 전 경제수석)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었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됐던 지난 5월엔 전반적인 경제정책 주도권을 장 실장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가 맡고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에 매진하도록 교통정리에 나섰었다. 하지만 최근 문 대통령은 외려 경제관료들과 손발을 척척 맞추고 있다. 관료에게 힘을 싣는다고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경제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집권여당의 조급함이 더해지며 과거 정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혁신성장의 중심축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대기업 투자를 재촉하는 쪽으로 옮겨갔고, 건설경기 침체를 의식한 나머지 ‘생활 에스오시(SOC)’, ‘생활혁신형 에스오시’라는 다소 생뚱맞은 개념까지 앞세워 경기부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익이 없다는 비판과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청와대가 앞장서서 인터넷전문은행을 금융혁신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도 아리송한 대목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정부가 대대적 경기부양에 나서야 할 정도로 경기가 가라앉은 건 아닌데, (집권세력이) 그간 경제정책에 대한 질타를 하도 많이 받아서 보여주기식 정책을 쏟아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장 실장 쪽의 정책 장악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점은 ‘장-김 갈등’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때때로 필요한 일이다. 다만 최근 장 실장 쪽에서 나온 메시지는 생산적 논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료에 대한 비판 일색이거나 정책 혼선만 부각시킨 경우가 적지 않다. 정권 출범 초기 강조한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초심은 찾아보기 어렵고, 최저임금 외에 소득주도성장을 염두에 둔 다양한 정책 추진 의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그의 저서 <역사의 정치학>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더 과감하게 뉴딜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배경 중 하나로 참모진과 내각에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기묘하게 공존한 점을 꼽았다. 서로 동문서답하는 사이에 산 중턱에서 더 오르지 못하고 머물렀다는 것이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개혁을 촉구하는 323명 지식인 선언은 이런 맥락에서 곱씹어볼 대목이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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