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일본, 갈수록 위험해지는 재해

성회용 기자 2018. 8. 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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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의 또 다른 재앙


● 일본도 '생명이 위험한' 폭염

8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다시 폭염이 일본을 뒤덮고 있다. 올여름 일본의 날씨와 재해는 온갖 재해에 숙달됐다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다.

아직 물러갈 기미가 없는 더위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못지않게 이런저런 기록들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역대 낮 최고 기온은 물론이고 열대야 일수, 폭염주의보 발령 지역 숫자에서 과거 기록을 끊임없이 갈아치우고 있다. 일본 언론은 6월 말부터 시작된 폭염에 ‘위험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우리처럼 ‘찌는 듯한 더위’라는 게 일상적 표현이었던 일본에서 ‘생명이 위험한 더위’라는 최상급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 열사병 환자, 신기록

지난달 열사병으로 후송되는 일본 노인

우리 열사병, 일사병을 일본에서는 열중증이라고 부른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위가 일찍 시작하면서 도쿄에서만 하루 평균 30명 가까이 열중증으로 구급차 신세를 지고 있다. 요즘도 도쿄 주택가에서는 밤마다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일본소방청 발표에 따르면 4월30일부터 8월5일까지 열중증으로 구급차에 실려간 사람 숫자가 일본 전국에서 7만 1천266명이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2013년 무더위 때 기록된 5만 8천729명을 훨씬 웃돈다. 후송된 사람 절반이 65살 이상이고 40%는 집안에서 쓰러져 실려갔다. 사망자만 138명이고 이 가운데 124명이 7월에 숨졌다. 집안에서 쓰러진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대개 건강이나 경제적 이유로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75살 이상에서 피해가 컸다.

● 7월 일본 중서부 호우로 200명 넘게 사망

7월 일본 중서부 수해

비 피해도 더위 못지않다. 전례 없는 폭우들이 여기저기에 들이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7월 초 일본 중서부를 사흘 동안 강타한 폭우 때문에 2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반수 가량이 역시 노인들이다. 몸이 불편하고 정보기기 활용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대피가 늦어 피해를 많이 봤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해마다 대여섯 차례 태풍을 겪고 여름에는 찜통처럼 더운 일본. 그런데 왜 유달리 올해 피해가 컸을까? 무엇보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이변이 제일 큰 원인이다. 하지만 기상이변 못지않게 재해피해를 키우는 건 바로 초고령사회다.

지난달 하순 12호 태풍 종다리가 일본에 접근할 때 수도 도쿄의 각 구청에도 비상이 걸렸다. 90살이 넘는 독거 노인들 집을 구청 공무원들이 일일이 방문해 유사시 안전 확보를 상의했다. 초고령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직계 가족이 있어도 떨어져 살면 위급할 때 바로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일본 구청 공무원들은 이들 초고령 노인들과 이웃을 연결시켜 주면서 빨리 대피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나마 태풍은 이처럼 발생부터 지켜보고 근접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나 있다. 국지성 호우는 더 위험하다. 7월 초 일본 서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50여 명의 노인들이 순식간에 집 2층까지 차오르는 물을 피하지 못해 숨졌다. 특히 피해가 많았던 마을들은 대부분 지방 소도시거나 시골 마을이었다.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가 많은 곳들이다. 대도시에 비해 공동주택이 적어 전례 없는 비상사태에 도움을 받을 이웃들도 가까운 거리에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같은 처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운전대를 놓은 지가 오래돼 먼 거리를 스스로 이동하기 힘들다. 깜깜한 밤중에 뒤늦게 마을 사이렌을 통해 울린 경보를 귀가 어두운 노인들 상당수는 듣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곳에 폭우가 쏟아져 하천이 범람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생긴 것이다.

● 초고령사회는 재해에 취약

침수 지역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일본 노인

올여름 일본의 폭우와 폭염은 초고령사회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위험을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보여줬다. 재해대비에는 세계 최강이라는 일본의 시스템도 초고령사회에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1대 1로 신경 써서 보살피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급상황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진이나 쓰나미는 거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만 5천 명 넘게 희생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희생자의 65%가 60살 이상이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놓고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반응이다. 이상기온과 재해는 예측이 가능하지도 않고 완벽한 대비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담당 공무원과 지역사회의 부단한 점검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무조건 대피를 권하는 전문가도 있다. 설혹 허탕을 치더라도 많은 대피를 해본 경험이 있어야 고령자들이 정말 위험한 시기에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평범해 보이는 대책, 실천이 관건

수해 지역에서 구조되는 일본 노인

이런 주장을 포함해 일본 언론이 제시한 고령자 재해 예방법과 대책을 정리해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1. 가족, 이웃과 비상연락망을 최대한 촘촘하게 유지한다.
2. 지자체가 주관해 고령자들에 대한 재해 대비책을 수시로 통보하고 훈련을 갖는다.
3. 지자체 공무원이 독거노인들을 수시로 점검한다.
4. 고령자들이 스스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피소를 충분히 확보한다
5. 기존의 재해경보 통보 시스템 외에 고령자 주택에 대한 별도의 경보 시스템을 구축한다.
6. 재해가 발생하면 방송을 통해 최대한 빨리 위험을 전파한다.

얼핏 보면 뻔한 내용들이지만 이를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게 일본 언론들이 제시하는 고령자 재해대책의 핵심이다.

● 한국도 대비 강화해야

일본의 수재민 대피소

한국도 올여름 폭염에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는 데 있다. 초고령사회는 재해에 특히 취약하다는 게 일본 사례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문제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더 빠르다. 독거노인들이 점점 뜨거워지는 폭염을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태풍이나 국지성 집중호우 상황에서도 고령자 대책을 보강해야 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가예산도 더 투입해야 한다. 국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성회용 기자are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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