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앞으론, 엄마닭 '집 평수' 보고 고르세요

윤희일 선임기자 2018. 8. 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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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살충제 계란’ 1년, 여전한 불신에 소비량 20~30% 줄고 값도 평년보다 19% 낮은데…

“남편은 반숙 계란 프라이를, 아이들은 계란말이를 좋아하는데 아직은 계란을 식탁에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아요.”

대전 유성구에 사는 주부 박모씨(50)는 마트에 가면 계란 매장을 그냥 지나친다. 그는 계란을 보면 ‘살충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가족들이 계란을 유독 좋아하고, 많이 먹었기 때문에 ‘살충제 계란’ 파동의 충격은 컸다. 박씨는 “가족들이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부를 사용한 요리를 자주 내놓지만 계란이 없는 식탁은 늘 아쉽다”고 말했다.

피프로닐 등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이 국내에서도 생산·유통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14일로 1년이 된다. 유럽지역을 강타한 살충제 계란 파동이 한국을 덮친 이후 국내 소비자들의 ‘계란 불신’ 현상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파동 이후 계란 소비량이 20~30% 줄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13일 조사한 계란 중품 30개의 소매가격은 4778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6.1% 하락한 상태다. 평년 가격과 비교하면 19.1% 낮은 것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전국을 휩쓸고 간 이후 1년,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계란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까.

공장식 사육 인한 진드기가 발단 정부, 적정사육면적 기준 상향 단, 기존 농장은 7년 후부터 적용

지난해 8월 살충제 계란 사태를 부른 직접적 원인은 닭 진드기였다. 진드기를 잡기 위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살충제 사용을 부르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좁은 공간에 닭을 가둬놓고 키우는 ‘공장형 밀집 사육’에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정부는 건강한 계란을 생산·공급하기 위해서는 닭의 생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마리당 적정사육면적을 현재 0.05㎡에서 0.075㎡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농가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기준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9월1일 이후 새로 만들어지는 농장에만 적용된다. 기존 농장은 7년 후에나 적용된다. 닭이 복사지 반 장 크기의 비좁은 케이지에서 알을 낳아야 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계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늘 답답해하던 소비자들에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오는 23일부터는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계란의 껍데기에 ‘사육환경번호’가 표시된다. 계란 껍데기에 적혀 있는 내용만 살펴보면 닭이 어떤 환경에서 사육됐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23일부터 껍데기에 사육환경번호 방사·케이지 개선 여부 식별 가능 6개월 뒤부터는 산란일자도 표기

지금은 계란 껍데기에 5자리의 생산자 고유번호가 표기되는데 23일부터는 그 뒤에 사육환경번호가 하나 더 붙게 된다. 1번은 ‘방사’, 2번은 ‘축사 내 평사’, 3번은 ‘개선된 케이지(마리당 면적 0.075㎡)’, 4번은 ‘기존 케이지(마리당 면적 0.05㎡)’ 등을 의미한다.

내년 2월23일부터는 계란을 생산한 날짜가 껍데기에 의무적으로 표기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더욱 넓어진다. 계란에 산란일자를 표시하기로 한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이다. 계란이 생산된 일자 4자리(월·일)는 생산자 고유번호 앞에 표기된다.

이밖에 내년부터는 계란·닭고기·오리고기에 대해서도 쇠고기·돼지고기처럼 생산·유통정보를 확인한 뒤 구매할 수 있는 ‘이력추적제’가 도입된다. 이력추적제는 2008년 국내에서 생산된 쇠고기에 처음 적용된 이후 수입 쇠고기, 국산 돼지, 수입 돼지고기 등으로 확대됐지만 계란이나 닭·오리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산란계 농장에 대한 검사를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10월 계란 검사 항목을 27종에서 33종으로 확대한 정부는 올해부터 모든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살충제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살충제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축산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면서 “계란의 생산·유통과 관련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제공하고 위생관리를 대폭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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