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때문에.. 사장님도 알바도 '거짓 계약서' 씁니다

김지섭 기자 2018. 8. 14. 03: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인상 못버티는 자영업 .. 근로 계약서에 '임금 부풀리기' 성행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최근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기준을 벗어나 근로자와 협의해 정한 임금을 주는 '자율 임금'을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시장에선 이미 이런 '자율 임금 협약'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형은 주휴(週休)수당을 생략하거나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나 대학 커뮤니티를 보면 "주휴수당 안 받는 조건으로 일을 구했다"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지만 편해서 할 만하다" 등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주휴수당 생략 '자율 협약 임금' 확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는 한 주에 하루 이상의 유급(有給) 휴일을 줘야 하는데, 이때 근로자가 받는 수당이 주휴수당이다.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할 때, 실제로는 6일 치 급여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시급 8000원에 하루 4시간씩 주 5일 근무하는 사람의 주급은 16만원(8000원×4시간×5일)이 아니라, 19만2000원(16만원+하루 치 급여)이다. 따라서 실질 시급은 9600원이 된다. 이 같은 실질 시급은 미국(8051원)과 일본(8497원)보다 많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달 '최저임금 모라토리엄(불이행)'을 선언하고, 정부에 "법정 최저임금과 관계없이 사용자와 근로자가 자율 합의해 임금을 정할 것"이라고 통보한 바 있다.

점주가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법에서 정한 것보다 돈을 적게 줄 경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口頭)로만 임금을 정한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근로감독에서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계약서에 임금을 부풀려 쓰고, 실제로는 적은 돈을 지급하는 사례도 많다. 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아르바이트 직원 3명에게 주휴수당을 포함해 시급 8100원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상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시급이 9000원 이상으로 적혀 있다. A씨는 "가게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인데, 월세 300만원, 식자재 값 200만원, 건물 관리비 등을 합해서 120만원가량이 고정비로 나가서 원칙대로 시급을 주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근로감독에 걸려 처벌을 받는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리한 정책이 범법자 양산하는 꼴

주휴수당을 조금이라도 인정받아 법정 최저임금보다 적게나마 더 받으면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한다. 편의점, 주유소 등 근로 여건 취약 업종 중에는 주휴수당은 아예 없고,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주는 곳도 많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 최모(25)씨는 "아르바이트 직원 입장에서도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사업주의 사정을 이해하고 법정 금액보다 적은 시급을 취하는 것이 이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알바노조에 따르면 경쟁 과열과 가맹점 수수료 등으로 갈수록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는 편의점 업계가 주휴수당 미지급률이 가장 높은 편이다. 본사 직영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주휴수당을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알바노조 설문조사 결과에서 편의점주 주휴수당 미지급률은 92%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미달률도 55%에 달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서모(26)씨도 올해 초 편의점주로부터 "오른대로 다 줄 수 없으니 그만두거나, 지금 시급 7200원에서 600원 올리는 것으로 타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서씨는 "6개월 넘게 일하며 학습과 병행할 수 있는 생활 패턴을 만들어놨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 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어차피 요즘은 법대로 안 주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옮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직원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 침체로 소득은 늘지 않고,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봤자 시장에서는 먹히지도 않고, 자영업자와 구직자 모두 이를 피해가려다 보니 각종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