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법, 사법농단 의혹 핵심 임종헌 e메일 삭제
[경향신문] ㆍ“퇴직 절차 따라 계정 삭제”…검찰, e메일 압수수색 영장 받고도 내용 확인 어려워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 등 퇴직자 다수가 법원 재직 시 사용하던 e메일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임 전 차장 등에 대한 e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았지만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 대법원은 퇴직자 e메일 계정에 대한 절차를 따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커지면서 임 전 차장이 쓰던 자료를 보전 조치하라는 전국 법원 판사들의 요구가 높아지던 시점에 기계적으로 e메일 계정을 삭제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특수3부는 지난달 말 임 전 차장(지난해 3월 퇴직)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심경 전 사법지원총괄심의관(지난해 1월 퇴직)에 대한 e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대법원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퇴직한 임 전 차장과 심 전 심의관의 e메일 계정이 폐쇄돼 그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는 답을 받았다. 다른 인사들에 대한 e메일 압수수색 영장이 다수 기각되고 이 3명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됐는데, 그중에서도 2명은 폐쇄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행정처 판사들이 내부 e메일을 통해 많은 자료들을 주고받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확보하려 했다”며 “사건 관련자 중에 이미 퇴직한 사람들이 많은데 차후에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 구성원이 퇴직하면 ‘사법부 전산망을 이용한 그룹웨어 운용지침’에 따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 관리자가 퇴직자에 대한 탈퇴신청서를 제출하고, 6개월 이상 지난 후 몇개월 동안의 신청분을 모아 삭제 처리가 이뤄진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의 e메일은 지난 9월 이후 삭제됐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증거인멸을 위해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의혹 당사자 중 퇴직을 했더라도 아직 탈퇴 신청을 안 한 사람들의 e메일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법원 안팎의 추가 진상조사 요구가 거셌고, 지난해 6월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임 전 차장 등 관련자들의 저장매체 보전을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하면 대법원의 삭제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양 전 원장의 컴퓨터가 퇴임 후 디가우징(물리적으로 파괴)됐던 것에 대한 비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검찰은 이날 e메일이 삭제된 당사자 중 한 명인 심 전 심의관을 조사했다. 검찰은 그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뜻에 따라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의원의 지위확인 소송 재판부에 선고기일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는지 확인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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