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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론까지.. 안보 위기의식 번지는 독일

인현우 입력 2018. 08. 14. 14:42 수정 2018. 08. 1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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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나치 부채감 여전한데도

트럼프의 EUㆍ나토 흔들기에 불안

정치권, 병력ㆍ군비 확충 논의 시동

징병제 부활ㆍ외국인 입대 검토

美 핵우산 대신 자체개발 주장도

독일 연방군이 지난달 18일 국방부에서 열린 나토 사무부총장을 지낸 호르스트하인리히 브라우스 중장의 퇴임 기념식에서 분열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진행된 그로서 자펜슈트라이히(Grosser Zapfenstreich)는 독일 연방군 최고 영예 행사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에는 군대를 경계하는 정치 문화가 정착해 있다. 전 유럽을 참화로 몰아넣은 나치 정권 시절에 대한 부채감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군(분데스베어)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군 장교 가운데서도 군복보다는 평상복을 입고 집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장을 강화하고 군비를 확충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은 정치권에 늘 부담이었다.

그런 독일에 최근 안보 위기의식이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비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적성국 러시아에 대항해 핵 억제력을 제공하던 미국의 태도가 돌변하면서 독일 정치인들은 더 이상 대서양 동맹에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위기감이 자연스레 정치권에서도 병력 및 군비 확충 논의로 연결되고 있다.

14일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우선 연방군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나토와 EU방위군 논의에서 독일에 기대되는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연방군 인력은 크게 부족하고 장비도 낡았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된 1990년 동ㆍ서독과 2차대전 당시 연합 4개국이 체결한 2+4 조약은 독일 연방군 규모를 37만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실제 연방군 수는 20만명을 넘지 못한다. 일간지 빌트가 지난 7월 공개한 2018ㆍ2019년 독일 국방 태세 백서에 따르면 즉시 가동 가능한 잠수함은 하나도 없고, 판처 전차도 절반 가량이 기동 불가 상태다. 5월에는 유로파이터 전투기 124대 가운데 4대만이 전투 준비 태세를 갖췄다는 주간지 슈피겔의 보도가 나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가운데) 독일 국방장관이 2월11일 독일 연방군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민병대 페슈메르가 훈련소를 방문한 모습. 독일의 국력 신장과 함께 독일군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에르빌=EPA 연합뉴스

인력부족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는 군에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독일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관영 DPA통신에 “연방군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인사 영입이 중요하다”라며 EU 시민 가운데 희망자를 연방군에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방안에 주류 양당인 기독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PD) 모두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만 사민당 일각에서는 “연방군이 용병 부대로 전락할 수 있다”라며 독일군에 들어온 인사는 독일 시민권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다른 방안은 징병제 부활이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에 따르면 CDU는 2011년 폐지된 징병제를 부활시키는 방안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구체 방안은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18세 이상 청년들이 성별과 관계없이 대략 1년간 연방군이나 긴급구조대ㆍ의료기관에서 복무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독일 공동체성의 상실’을 우려하는 CDU와 독일대안당(AfD) 등 보수 진영에서는 이 방안이 청년들이 국가에 봉사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기민련 산하 청년조직 대표 파울 치막은 지난 5일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훌륭하고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기에 무언가를 돌려줄 기회가 필요하다”라며 이런 주장을 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기민련의 국방정책을 담당하는 헤닝 오테 의원은 “구식 징병제는 현대적 안보 위협을 해결하는 방안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친기업 성향 자유민주당(FDP)도 “끔찍한 돈 낭비”라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독일 집권연정을 구성한 호르스트 제호퍼(왼쪽부터) 기독사회연합 대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 집권 연정인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각 당 내에서도 징병제 부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주장이 혼재돼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급기야는 자체 핵무장을 하자는 의견까지 언론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원로 정치학자 크리스티안 하케가 지난달 29일 일간지 벨트 일요일판 기고에서 “독일은 더 이상 미국의 핵무기로 보호받지 못한다”라며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한 것이 계기였다. 직업외교관 출신인 볼프강 이싱거 뮌헨안보회의 회장이 “독일의 핵 보유 시도는 유럽 일대로 급격한 핵 확산을 부를 것”이라며 즉각 반박 기고를 했지만, 그도 새로운 ‘핵 우산’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며 프랑스의 핵무기에 예산을 지원해 ‘연장된 억지력’을 마련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실적으로 독일이 핵 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안보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핵무장 토론에 반영돼 있는 셈이다.

이처럼 독일 정치권과 언론에서 안보 위기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군비 확충에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유고브에 따르면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5% 이상으로 국방비를 늘린다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복안을 지지하는 국민은 1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60%는 국방비가 현재 수준이 적정하거나 오히려 너무 많다고 답했다. 게다가 지난 5월 발생한 연방군 내 테러 조작 모의 사건을 계기로 연방군 내에 여전히 나치 시대 국방군의 정체성이 일부 남아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등, 연방군이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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