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시평] 무능한 진보, 소득주도 성장으로 제 무덤 파나

이철호 2018. 8. 1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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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실험 피해는 온 국민의 몫
땅에 넘어지면 땅 짚고 일어서야
소득주도 성장 대신 혁신 성장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더 중요하다
이철호 논설주간
꼭 1년 전 이 자리(8월 23일자)에 ‘한국 경제의 생체실험…소득주도 성장’이란 글을 썼다. 3주 후엔 ‘경제학원론과 정반대의 위험한 소득주도 성장’ 칼럼도 실었다. ‘운동권 경제학’인 소득주도 성장은 한 번도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원형질인 임금주도 성장론은 경제를 ‘맞다/틀리다’가 아니라 ‘옳다/나쁘다’는 도덕적 잣대로 접근한다. 경제이론이라기보다 이념이나 사상에 가깝다.

이공계의 최고 학술지라면 단연 ‘사이언스’와 ‘네이처’다. 세계 경제학계의 3대 학술지로는 ‘AER(American Economic Review)’과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가 꼽힌다. 온갖 경제 논문들이 실험과 시뮬레이션, 논쟁을 통해 검증되는 곳이다. 지난 50년간 이 학술지들을 검색해보면 임금주도 성장 논문은 단 한 편도 발견하기 어렵다. 간혹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에 실린 적은 있지만 이 학술지의 인용 순위는 세계 252위에 불과하다. 청와대 마지막 회의에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비주류) 학자로서 주장해 온 소득주도 성장이 국가 중요 정책으로 자리 잡아 무한한 영광”이라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임금주도 성장론자들은 스스로 포스트 케인지언이라 부른다. 실제 케인스 학통을 이어받은 ‘뉴 케인지언’과는 DNA가 전혀 다른 학파다. 핏줄을 따져보면 케인스보다 오히려 마르크스 쪽에 가깝다. 정통 경제학은 임금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 한계노동생산성에 좌우된다고 본다. 반면 이들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자본가가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가면 이윤주도 성장이고, 노동자가 더 많이 차지해야 임금주도 성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이 오를수록 민간 소비는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2년간 최저임금 29% 인상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한국 경제가 급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착각이다. 정통 경제학에서 경제성장은 자본·노동·생산성의 함수다. 자본과 노동이 더 투하되거나 기술이 발전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함수에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를 대입하면 경제성장은 꼬꾸라질 수밖에 없다. 임금 인상에 따라 생산비용이 높아지면 기업은 설비 투자와 고용을 줄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로 노동 투입이 감소해도 성장은 뒷걸음질 친다. 지난 1년간 소득주도 성장 실험이 저성장과 고용 참사로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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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붉은 깃발’까지 인용하면서 혁신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소득주도 성장을 접었다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정책을 넘어 현 정부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내년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10.9% 올렸고 재심의 요구는 걷어찼다. 주 52시간 노동도 강행했다. 아무리 경제가 망가져도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할 기미는 없다.

오히려 청와대는 “소득주도 정책의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부작용은 세금을 쏟아부어 땜질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정부 편이 아니다. 최악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올 상반기는 최저임금 1차 쇼크에 휘청댔을 뿐이다. 하반기엔 주 52시간 노동의 돌직구가 날아들고 내년에는 최저임금 8350원의 쓰나미가 덮친다. 여기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미·중 통상 마찰,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 온갖 지뢰밭이 널려 있다.

지난 대선 때 진보진영은 보수를 향해 “무능하다”며 한껏 조롱했다. 평균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면 진보적인 김대중(5%)·노무현(4.3%) 정부 때보다 보수적인 이명박(2.9%)·박근혜(2.9%) 정부가 더 낮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은 시간 문제다. 올해 성장률 목표(2.9%)를 이룰지부터 불투명하고 내년 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최순실보다 더 무능한 좌파”라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다시 경제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규제 완화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줄기차게 해온 권고를 떠올려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소득주도 성장은 이 권고를 정반대로 거스르고 있다. 과연 현 정부가 촛불집회 주역인 귀족노조와 정면 대결을 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보조국사 지눌도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했다. 이대로 가면 소득주도 성장은 대재앙으로 번지고 그 고통과 피해는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쯤에서 어설픈 생체실험은 멈춰야 한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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