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에 혐오 쏟아낸 남성 커뮤니티

2018. 8. 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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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 성매매 종사자들에 최대 2천여만원 자활 지원
남성 커뮤니티 중심으로 '창녀연금' 등 혐오 발언
지원단체들 "성매매에 대한 오해·편견 여전..
집결지 탈출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 지원"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인천시 미추홀구가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에게 1인당 2000여만원씩 자활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자 오늘의유머, 웃긴대학, 뽐뿌, 인벤 등 남성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창녀연금’ 등의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스로 쉽게 돈을 얻고자 한 일에 혈세를 낭비하지 말라”는 내용의 청원이 15일 오전 10시 기준 15건 올라와 있다.

성매매피해자지원단체들은 “(이런 현상이) 새롭지 않다”면서도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초창기에 사람들이 가졌던 성매매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오해와 편견이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은 성매매 근절을 위한 여러 대책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 여기에조차 반대 의견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자활 비용을 지원받는 여성들은 인천에 마지막으로 남은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이다. 옐로하우스 철거 뒤 해당 지역에는 708가구 규모의 아파트·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천시 미추홀구는 13일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하고 탈성매매확약서·자활계획서를 제출한 종사자 가운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10명씩 모두 40명을 선정해 1인당 연간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월 100만원 이내의 생계비와 700만원 내외의 주거지원비, 월 30만원 이내의 직업훈련비가 포함돼 있다. 만약 이 돈을 지원받은 뒤 성매매 행위가 확인되면 즉시 반납해야 한다. 여성들의 성매매 재유입을 방지하고 사회로의 복귀를 돕고자 하는 애초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인천의 마지막 남은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 <한겨레> 자료 사진

옐로하우스 종사자 지원·상담 활동을 해온 인권희망강강술래 부설 희희낙락상담소 정미진 소장은 “이 여성들은 사회적 자원과 연계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 돈은) 이들이 또 다른 착취의 공간으로 다시 이동하는 대신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라고 말했다. 정미진 소장은 “인천뿐 아니라 대구, 전주 등 다른 지역에도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가 마련돼 관련 사업이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부산시의 경우 2006년부터 성매매 피해자에게 대학 학자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0명이 모두 1억35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성매매는 양지에서 막아봐야 풍선 효과로 점점 음지로 숨어들지 절대 없애지 못하는데 뻘짓”, “강제로 잡혀 온 사람 1명도 없을 텐데”, “남자는 성매매 단속에 걸리면 벌금 내고 몸 팔아 돈 버는 여자는 장사 못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돈 주고” 같은 의견이 속속 올라왔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도 “성매매에 종사하는 다수의 여성들은 명품 가방과 사치를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왔다”, “성매매 여성을 찾는 남성들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여성들이 너무나 쉽게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성매매를 강요하지 않았고 스스로 쉽게 돈을 얻고자 자의로 성매매를 한 것인데 없어진다고 위로금을 지급하냐”와 같은 주장이 이어졌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10여개의 청원은 최소 1명에서 최대 1000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이를 두고 사회 취약 계층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로 내몰리는 현실과 성매매 산업 안에 도사린 착취 구조를 외면한 혐오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성매매특별법의 목적도 부정하는 표현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성매매·가출 등을 경험한 위기청소년 1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8%가 부모 또는 보호자로부터 폭행, 감금, 굶김 등의 학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 174명을 대상으로 최초 성매매 경험 연령을 묻자 21.8%가 ‘10대’라고 답했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2016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과거나 지금이나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감독하고 갈취하는 관계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호해 줄 친척이 없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성매매로 내몰리는 게 현실인데, 마치 자발적 선택인 것처럼 말하는 건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남성들의 왜곡된 해석”이라고 짚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어 명품을 사는 등 사치를 부린다”는 일부 남성들의 주장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2016년 발간자료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매매 피해를 야기하는 것은 업주, 알선업자, 사채업자 등을 중심으로 한 성매매 알선 조직”이라며 “성매매 여성들은 외면적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이자, 각종 벌금, 옷값, 방값 등 온갖 형태의 채무 등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무려 3650%의 고리대를 매기는 업주도 있다는 것이다.

2000년 9월19일 감금된 채 잠자고 있던 성매매 피해여성 5명이 목숨을 잃은 군산 대명동 ‘쉬파리골목’ 화재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성매매 여성들은 성폭행, 살인 등 강력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억압된 환경 아래에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2000년 9월19일 군산시 대명동 일명 ‘쉬파리골목’ 무허가 성매매 업소에서 불이 나 여성 5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쇠창살 안에 사실상 감금당한 상태였다. 2010년에는 ‘청량리 588’로 불리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던 3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발견됐다. 2016년에는 20만원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뒤 ‘한번 더’를 요구하는 자신에게 10만원을 더 달라는 성매매 종사자를 살해한 사건과 성매매 도중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잇따랐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살해당할 위험성이 다른 직업군 혹은 특정집단에 비교해 적어도 17배 높고 기대수명은 34살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성매매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은 성매매가 만연한 한국의 남성 중심 문화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는 말도 나온다. 2016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남성 응답자 1050명 가운데 50.7%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성 구매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최근 1년간 성 구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25.7%였다.

성매매 피해자들의 탈성매매·자립을 돕는 다시함께상담센터 김민영 소장은 1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성매매 피해자 자립 지원은 성매매 집결지 해결을 위한 여러 접근법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남성들끼리 공유해 온 성매매 문화를 드러내놓고 문제시하고 산업적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미진 희희낙락상담소장 역시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요 차단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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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이후

15일 보도 이후 기사 도입부에서 인용한 ‘창녀 연금’이라는 표현을 두고 “그런 표현은 어떤 커뮤니티에서도 찾을 수 없다”며 각 온라인 커뮤니티 검색 결과를 갈무리해 기자에게 전자우편과 댓글 등으로 보내며 항의한 독자들이 있었습니다.

인천시 미추홀구가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에게 1인당 2000여만원씩 자활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자 남성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쏟아진 반대 의견들. 그래픽 정희영 기자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우선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사 작성 전 정리한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내용을 공유합니다. ‘창녀 연금’이라는 표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건 두 개의 단어를 별개로 쓰면서 기사에 인용할 수 없는 비속어까지 섞어서 쓴 표현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나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년’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창녀’라는 표현도 여성 개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성매매의 책임을 여성에게 오롯이 돌리는 혐오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기사에선 인용의 방식으로 도입부에 한 차례 언급했을 뿐, 그 뒤에는 성매매 업소 종사자, 성매매 피해자라고 썼습니다.

1인당 최대 2260만원 규모의 자활 지원금을 두고는 중산층 연봉에 견주며 “(그런 큰 돈을) 갖다 박냐”는 이야기부터 “(의무복무) 군인의 전체 연봉보다도 높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연금 말고도 퇴직금, 영업권 보상, 보너스 같은 다양한 비유가 나왔지만 성매매를 ‘여성 착취 폭력’으로 보기보다는 여러 생계 수단 가운데 하나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모두 같다는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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