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염 속 무한대기, 탈진한 아이는 결국..사각지대 놓인 아역배우들

입력 2018.08.15. 17:31

"엄마, 너무 힘들어."

이모 씨(40·여)는 지난달 단편 드라마 야외 촬영장에서 아역배우로 출연한 9살 아들의 말에 그저 물만 건넬 수밖에 없었다.

단편 드라마에 아들을 출연시켰던 김모 씨(40·여)는 "PD가 주 40시간 넘게 촬영을 요구했다. '일주일만 고생하면 끝나지 않느냐'고 말해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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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엄마, 너무 힘들어.”

이모 씨(40·여)는 지난달 단편 드라마 야외 촬영장에서 아역배우로 출연한 9살 아들의 말에 그저 물만 건넬 수밖에 없었다. 35도가 훌쩍 넘는 폭염 속에서 촬영은 4시간씩 사흘 간 계속됐다. 이 씨는 “하루 촬영 시간을 줄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작사는 비용이 늘어난다며 거절했다. 결국 탈진한 아이는 열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져 입원했다.

방송계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요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아동 배우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4년부터 시행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르면 15세 미만은 근로 시간이 주 35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촬영하는 것은 휴일에만 가능하고, 보호자가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법을 지키는 현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아역 배우는 촬영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고 ‘무한대기’도 다반사다. 올해 한 지상파 드라마에 출연한 A양의 어머니 박모 씨(38·여)는 “촬영이 오후 4시로 예정됐지만 자정이 넘어 찍었다. 준비하고 대기한 시간을 합치면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제작진은 ‘방영 3,4일 전부터 촬영을 시작하니 이해하라’는 식이다”고 했다. 새벽 늦게 촬영이 끝나 조금 쉰 뒤 곧바로 강행하는 일명 ‘디졸브 촬영(화면 겹치기 방식의 장면전환에서 나온 촬영장 속어)’에 아이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촬영 일정을 조정하기도 어렵다. 한 아역배우 부모는 “촬영 스케줄은 일방적으로 통보받기 때문에 시간을 바꿀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 간 고성, 욕설 등에 아이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아동 배우들은 열악한 조건을 견딜 수밖에 없다. 촬영장에서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다작(多作) 스펙’을 갖춰야 섭외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단편 드라마에 아들을 출연시켰던 김모 씨(40·여)는 “PD가 주 40시간 넘게 촬영을 요구했다. ‘일주일만 고생하면 끝나지 않느냐’고 말해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영국에서 어린이는 하루 4시간 이상 촬영 할 수 없다. 제작사는 이를 엄격히 지켜 영화 ‘해리포터’는 영화 촬영이 6개월 이상 걸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9세 미만은 6시간, 16세 미만은 7시간 등 연령별로 촬영 시간을 정해놓았다. 촬영 현장에 교사자격증을 지닌 선생을 보내 아이의 학습권도 보장한다. 한 외주 제작사 PD는 “노동 여건을 개선할 때 성인 뿐 아니라 아이까지 고려해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