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줘서 고맙다"..68년 만의 만남

조국현 입력 2018. 8. 15. 20:16 수정 2018. 8. 1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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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이제 닷새 뒤, 다음 주 월요일이면은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만납니다.

전쟁 통에 헤어진 뒤에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남은 닷새가 더 길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설렘 가득한 어르신들의 사연을 조국현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빡빡머리 형의 흑백사진은 빛이 바랬지만, 이제 곧 빛을 보게 생겼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68년 동안 간직해온 바람이 있습니다.

"큰형님이 북에 살아 계시다" 대한적십자사의 그 전화가 처음엔 노인을 속이려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답니다.

[이수남/이산가족] "거짓말 같아요. 처음엔 이웃, 친척에게도 연락을 안 했어요. 며칠동안, 진짜인가 싶어서…"

형제가 헤어진 건 1950년 8월.

19살이던 종성 씨가 서울 이태원 집 앞에서 인민군에게 끌려가던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 일흔이 넘어 여든 넘은 형을 만난다는 생각에 이수남 씨는 요즘 밤마다 잠을 설칩니다.

황우석 할아버지는 1951년 1·4 후퇴 때 인민군 징집을 피하려 잠시 집을 떠난 이후 세 살배기 딸을 지금까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우석/이산가족] "'3개월만 피난을 하고 고향에 들어가자', 그런 생각으로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금 68년이 됐습니다."

30년 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좌절됐고 그 사이 북에 있던 여동생 셋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렴풋이 얼굴 윤곽만 기억나는 딸을 생각하면 아프고 미안할 뿐이라는 황 씨.

그래도 살아남은 딸이 고맙고, 이런 날을 맞는 삶에 또한 감사합니다.

[황우석] "지금까지 살아줘서, 살아서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MBC뉴스 조국현입니다.

조국현 기자 (jojo@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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