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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찾은 이름, '명촌장모'와 '금산만두'

윤봄이,방준원 입력 2018.08.15 22:01 수정 2018.08.15 22: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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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평양전쟁 격전지였던 일본 오키나와에서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이 20만 명이 넘습니다.

조선에선 최소 3천 5백명이 군인과 군무원으로 끌려갔고, 이중 7백 명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요.

KBS 취재팀이 이들의 자취를 추적해 그 후손들을 찾아냈습니다.

윤봄이, 방준원, 두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5월 28일자, 미국 지 사진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미군 옆으로 죽은 이를 표시하는 묘표 14개가 서있습니다.

그런데 어색한 일본 이름이 눈에 띕니다.

'명촌장모', '금산만두', 일본식으로 개명한 한국인 이름입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이고 어떻게 숨진 걸까?

에메랄드 빛 바다가 평화롭게 출렁이는 남국의 섬.

사진 속 풍경을 쫓아 묘표가 있던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카무라 히데오/오키나와 모토부 주민 : "이 능선을 보고 금방 세소코섬이란 걸 알았어요. 여긴 70여 년 전과 변함이 없어요."]

이곳이 사진 속 묘표가 세워져있던 자리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 주민들 만이 과거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나카무라 할아버지.

미군 폭격 직후 일본군이 바다에서 시신을 건져 화장했고, 주민들이 유골을 땅에 묻었다고 말합니다.

[나카무라 히데오/오키나와 모토부 주민 : "(시신에) 불을 붙이고 나서는 군인들이 아무도 없었어. 내가 저쪽에 앉아서 주먹밥 하나 먹으면서 24시간 동안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어."]

항구에서 만난 도모리 씨는 구걸하는 조선인들을 아이들이 놀리던 노래를 기억합니다.

["민가의 아줌마, 고구마 주세요."]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늘 지쳐 보였다고 했습니다.

[도모리 데츠오/오키나와 모토부 주민 : "많은 사람들이 쭉 쓰러져 있었어요. 가끔씩 일본군 병사가 와서 발로 걷어찼어요."]

오키나와 징용자를 연구해 온 오키모토 씨.

이 곳에서 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각각 해군과 육군 군속, 군무원이라고 나옵니다.

근무지는 '히코산마루'. 미군 폭격에 침몰한 배입니다.

[오키모토 후키코/강제 동원 조선인 연구자 : "사망한 날짜가 1945년 1월 22일, 공중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흔적은 여기까집니다.

매장 추정지는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사진과 기억만 남았습니다.

[오나하 야스타케/일간지 '류큐신보' 기자 : "전쟁이 끝나고 70여 년이 지나면서 잊혀 버렸습니다. 이 아래에 유골이 아직 잠들어 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모여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KBS 뉴스 윤봄이입니다.

▼ 조선인 명장모와 김만두, 후손 찾았다

[리포트]

명촌장모와 금산만두, 우리 이름은 명장모와 김만두입니다.

가기록원에서 이들의 자취를 찾아봤습니다.

일제 강점기 징용자 명부를 확인했습니다.

명촌장모와 명장모로 확인되는 기록은 4건 금산만두와 김만두로는 41건입니다.

이 가운데 오키나와에서 숨진 사람은 누구일까.

["명촌장모님, (사망하신 곳이) 일본 남쪽 해상인 거 같아요. 이분 본적은 전라남도 고흥군..."]

정부 기록 등을 확인해 유족을 추적했습니다.

[명 씨 문중 관계자 : "명장모 씨라는 분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몰라도 형제분 중에 있었다 하는 그거..."]

명장모 씨의 조카, 성훈 씨는 전남 광양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버렸다던 작은아버지 이름은 기억하지만, 오키나와에서 숨진 사실은 처음 들었습니다.

[명성훈/명장모 조카 : "여기 가슴이 뭉클하고, 감정이 별로 안 좋네요. 혹시 내가 모셔 갖고 오신다 그러면 제가 잘 모셔야죠."]

김만두 씨의 조카 창기 씨는 통영에서 찾아냈습니다.

아버지가 이따금씩 일본에 끌려간 동생을 그리워했다고 기억했습니다.

[김창기/김만두 조카 : "술 한 잔 드시면, 만두 삼촌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잡혀갔단 말) 뿐이 없는 거라."]

당장이라도 유골 발굴을 통해 DNA 확인을 하고 싶지만, 벽이 만만치 않습니다.

[김정희/김만두 조카며느리 : "모시고 오는 것까지도 좋지만, 거기에 대한 비용이 우리 서민으로선 생각을 못 하겠더라고요."]

10대, 20대 시절, 혈혈단신 고향을 떠난 강제 동원자들, 죽어서도 돌아올 길이 막막합니다.

KBS 뉴스 방준원입니다.

윤봄이기자 (springyoon@kbs.co.kr)

방준원기자 (pcbang@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