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이 싫어한다며.. 與의원 "납북자 명칭, 실종자로 바꾸자"

선정민 기자 2018. 8. 1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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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갑석 의원, 개정안 2건 발의 논란.. 동료의원 12명도 서명
법안 통과되면 '강제로 억류·거주' 북한의 납북책임 사라져


여당 의원이 북한에 끌려간 민간인의 법적 명칭을 '납북(拉北)자'가 아닌 '실종(失踪)자'로 바꿔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납북'의 사전적 의미는 북한으로 납치돼 갔다는 뜻이고, '실종'은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북한의 납북 책임을 지워주는 의미가 있다. 납북자 가족들은 "전형적인 북한 논리를 답습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사진〉 의원은 지난 13일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6·25 납북자법)'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전후 납북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2010년 제정된 '6·25 납북자법'은 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의 피해를 수집하고 가족 등 지위를 국가가 확인해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근거 법률이다. 2007년 제정된 '전후(戰後) 납북자법'은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이후 발생한 강제 납북 피해자에 대해 유족과 귀환 납북자 등에게 보상·지원하는 법이다.

송 의원은 두 법안 제안 이유에서 "'납북자'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단어"라며 "남북 관계에서의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실제 장관급 회담 등 실무회담에서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송 의원 법안이 통과될 경우 현행법에서 '납북'이라는 용어는 없어지게 된다. 현행법상 '납북'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에 의해 강제로 억류·거주하게 된 자'라고 해 북측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6·25 납북자법'에 의거해 작년까지 4777명이 납북자로 인정됐고, '전후 납북자법'에 의해서도 425건이 인정돼 위로금 등으로 145억원이 지급된 바 있다.

두 개정안은 같은 당 안규백 국방위원장과 이수혁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 등 총 12명이 서명했다. 송 의원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4기 의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참여연대 운영위원과 노무현재단 지역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지내고 지난 6·13 재·보궐 선거에서 광주 서구갑에 당선됐다.

이에 대해 지난 14일 사단법인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는 송 의원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소했다. 협의회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6·25 당시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납치 범죄를 부인하면서 '납북자(abductee 또는 kidnapped people)'라는 용어 대신 '실향민(displaced civilian)' 또는 '실종자(missing)'라는 용어를 고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관련 법안을 당장 철회하고 10만 전시 납북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송 의원 측 관계자는 "남북 관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납북'이라는) 이념적인 용어를 개정하고자 선제적으로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며 "기존 납북자의 지위나 (북에 의해 납치됐다는) 내용상에 변화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전시행방불명(missing in action)'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적십자회담에서도 '납북' 단어를 피해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김태훈 회장은 "송 의원 법안대로라면 북한의 납치, 자진 월북, 제3국으로 행방불명 등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실종자'가 된다"며 "'납북' 용어의 변경은 납치의 주체가 되는 북한 기관 등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실종'이라면 납북자에 대한 지원이나 명예회복도 근거가 희박해져 법을 폐지하는 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날 국회 외통위 관계자는 "개인 발의 법안으로 이번 임시국회나 정기국회 때 추진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납북자를) 6·25 전시납북자로 규정한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국회의원의 의견일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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