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55세에 집돌이된 퇴직자, 우연히 탁구장 갔다가..

박영재 입력 2018.08.18. 09:00 수정 2018.08.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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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26)
은퇴 후 중년층은 이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점점 불면의 밤이 길어지고 사회에서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린다. [중앙포토]

김민석(65) 씨는 주민센터에서 탁구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공장일을 천직으로 생각했고, 또 능력도 인정받아 공장장까지 승진했다. 55세에 퇴직을 했는데, 그때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그렇게 전화가 많이 오고, 여기저기 저녁 약속도 많아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퇴직하고 나니 전화가 뚝 끊기고 말았다. 더욱 힘든 것은 자신이 천직으로 알고 있던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점점 불면의 밤이 길어졌다.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잉여 인간이 된 거 같고, 사람을 만나기가 꺼려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슬슬 아내 눈치가 보였다. 어떤 때는 아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지나치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느 날 주민센터를 지나다 보니 탁구 동호회가 눈에 띄었다. 용기를 내 쭈뼛쭈뼛 탁구장으로 들어가 보니 학생들부터 김 씨 또래의 장년들,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탁구를 즐기고 있었다. 한때 그도 젊은 시절 탁구를 꽤 했다. 이에리사가 주축이 돼 1973년 세계선수권 여자단체전서 우승한 ‘사라예보의 기적’ 덕분에 한창 탁구 붐이 일 때 김 씨도 탁구장에 자주 출입했다.


탁구장서 삶의 활력 찾은 공장장 출신 퇴직자
동호회 회원들이 탁구를 즐기고 있다. [중앙포토]

그날 주민센터 탁구 동호회를 발견한 이후 김 씨의 하루는 달라졌다. 본인이 좋아하는 탁구를 하면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활기를 찾았고, 아내도 함께 탁구장을 찾게 됐다. 요즘은 부부 복식으로 경기를 즐긴다.

그렇게 탁구의 매력에 빠진 김 씨는 이른 오전과 오후에는 주부 또는 시니어들과 저녁 시간에는 직장인들과 연습을 했다. 방학 시즌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탁구를 가르치는 자원봉사활동도 했다.

이 탁구동호회는 회원이 50명 정도인데 김 씨가 자원해 총무를 맡았다. 부인은 “젊은 사람도 있는데 그 나이에 총무는 웬 총무냐”라며 타박을 했다. 하지만 젊은 친구와 어르신들을 연결하는 가교로는 자신이 적격이라고 생각하고 서슴없이 총무가 됐다.

김 씨는 “이 나이에 젊은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는가? 자식들도 피하는데…”라며 총무예찬론을 펼치곤 한다. 생활에 활력이 생기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이 생각났다. 수소문해서 동창회에 나가니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과거 김 씨처럼 소극적으로 집에만 있는 친구도 많았다. 그래서 곰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창들에게 전화해 탁구 동호회에 나오라고 권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고 있다. 42.195㎞. 과연 반퇴 세대들은 이 마라톤 경주에서 어느 정도에 와 있을까. 이제 직장생활도 마무리되는 단계이니 피니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 지금쯤 전력 질주해 인생 마라톤에서 막판 뒤집기를 해서 승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50플러스센터나 문화센터에는 다양한 형태의 SNS 강좌가 잘 개설되어 있다. [AP=연합뉴스]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일반화된 요즘 이런 판단을 하면 큰일 난다. 아마도 50대이면 인생 마라톤에서 막 반환점을 돈 지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까지 달려온 거리만큼을 더 가야 하는 지점이다. 인생 마라톤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나를 되돌아보고 점검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제까지 본인의 삶을 살펴보자. 본인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이 장점은 더욱 살려야 한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받아들여 배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필자는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많은 직장인이 보안이나 개인정보 누출 등의 이유로 페이스북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우리 아이나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그냥 마구잡이로 하면 안 되고, SNS 강좌 등을 통해 배워야 한다. 50플러스센터나 문화센터를 방문하면 다양한 형태의 SNS 강좌가 개설되어 있으니 이를 이용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이제까지의 삶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삶에는 쓸모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집과 고집이다. 이렇게 냉정하게 판단해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즉 내 인생을 리셋(Reset)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축구는 전반전과 후반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장전도 있다. 50대에 퇴직한 지금 내 상황이 축구에서 후반전이 되느냐 아니면 연장전으로 봐야 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후반전이냐 연장전이냐는 별문제가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같은 룰로 경기를 계속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생 게임에선 축구하다가 권투할 수도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인생이 어떤 길로 흘러갈지 모른다. 인생의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pixabay]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다음 게임이 축구가 아닌 권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까지 내가 했던 축구는 11명이 함께 뛰면서 공을 사용해 발을 이용했던 게임이었다면, 권투는 혼자서 손을 사용하는 격투기다. 완전히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축구로 연장전 경기를 계속했으면 좋겠지만, 50대 이후의 재취업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 경우도 생각해보자. 이제까지는 포지션이 공격수였지만 특별히 뛰어난 공격수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주변에 잘하는 공격수가 너무 많아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축구에 재능이 없는데 어찌하다 보니 축구선수가 됐을 수도 있다.

100세 시대에 인생의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필요하면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게임으로(예를 들어, 같은 발을 사용하는 ‘세팍타크로‘와 같은) 바꾸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