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라진 텔레그램 메시지 "안희정 검증은 제대로 않고 피해자 의심"

송은미 입력 2018.08.18. 09:03 수정 2018.08.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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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 1심 판결 네 가지 의문

사건 후 함께 식사 사례 많은데

피해자 행동ㆍ진술 신빙성 배척

“이건 아닌 것 같다” 거부했지만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안해” 판단

재판부 ‘노 민스 노’ 언급 관련

여성계 “위력 행사 등 논점 흐려”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대로 김지은(33ㆍ전 충남도 정무비서)씨의 진술에는 정말 일관성과 신빙성이 떨어질까. 전문가들과 김씨의 변호인단은 그 판단 근거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무엇보다 ▦가해자 검증보다 피해자 검증에 주력한 점 ▦김씨의 상태가 학습된 무기력이나 방어기제가 아니라고 그 심리상태를 단정한 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으니 당연히 적극적으로 행사도 했어야 한다는 논리 등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텔레그램 삭제는 피해자 책임? 安 진술번복은 왜 통과

재판부는 김씨의 텔레그램 삭제 배경에 주목하며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했다. 김씨가 스스로 불리한 내용을 지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의 변호인단은 “텔레그램 삭제 관련돼선 누가 책임이 있는지 확정되지 않았는데 사실 오인이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메신저 텔레그램은 그 구조상 본인만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상대가 삭제할 경우에도 내 휴대폰에서 흔적이 사라진다. 안 전 지사 측이 지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안 전지사는 업무 중간중간 김씨에게 메시지 삭제를 지시해왔다. 법정에서 김씨는 “일부 이모티콘을 지우기는 했어도 인위적으로 대화를 삭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은 안 전 지사 측도 적지 않다. 그는 수사과정에서 일체 본인의 업무용 휴대폰은 제출하지 않았고, 심지어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스스로 이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 배경은 선고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또 안 전 지사는 김씨의 폭로 이후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비서진의 의견은 잘못됐다’고 했지만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돌연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대한 고민이나 지적 역시 현재로선 드러나지 않는다. 피고인보다 피해자 검증에 주력했다는 공분이 이어지는 대목이다.

피해자 심리상태 단정, 누가했나

한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피해자의 심리상태에 대해 감정 전문가들은 이처럼 단정하지는 않고 ‘이럴 수 있다’ 정도의 의견 제시를 한다”며 “이를 결국 최종 판단하는 권한은 재판부밖에 없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상태가 아니었겠냐”고 분석했다. 선고문에 드러난 그 주된 근거는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는 피해자의 태도다.

해당 변호사는 “굉장히 많은 피해자가 위력관계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바로 다음날부터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한다”며 “숱한 다른 사례에서도 사건 이후 가해자와 밥 먹거나, 가해자가 초대한 자리에 간다거나, 선물 준다거나, 다정한 문자를 보낸다든가 하는 정황이 나왔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쉽게 피해자 진술 신빙성이 배척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업무활동이 ‘피고인에 대한 호감’으로까지 해석되는 상황이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나

또 다른 여성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도대체 그 행사를 얼마만큼 더 적극적으로 표현했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피해자의 저항능력과 강력한 의사로 지켜내야 하고 결국 지켜내지 못하면 포기한 걸로 봐야 하냐는 얘기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김씨는 첫 사건 당시 일관되게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수행비서로서 바로 “예”라고 응답했던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 즉 고개를 숙이고 쭈뼛거리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등의 언급을 이미 했다는 것. 게다가 이 과정에서 강한 저항 유무를 따지는 것은 강간사건에서지, 업무상 위력 사건의 쟁점이 아니라는 얘기다.

해당 변호사는 “심지어 최근 강간 사건 판례를 보면 피해자의 저항 행위를 전보다 넓게 해석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업무상 위력사건에 피해자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 자기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보는 부분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노 민스 노’룰, 과연 주요 이슈인가

비동의간음죄, 즉 피해자가 싫다는 의사표시가 있었으면 처벌하는 ‘노 민스 노(No means no) 룰’이 없어서 처벌이 어렵다는 재판부의 의견이 “논점을 흐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김현영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은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죄는 권위주의, 가부장주의가 심각한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선진국에서도 이 도입을 심각하게 검토하는 경향”이라며 “재판부가 이미 있는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위력의 존재, 그 행사 여부, 간음으로 이르는 인과관계를 모두 쪼개 하나라도 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 과정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분명 위력에 의한 간음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권세를 가진 사람이 타인의 성을 착취했느냐 여부에 집중하기 보다는 비동의간음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다른 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했다는 식의 의견제시는 안 전 지사에게 위력 행사가 정말 없었냐는 질의가 집중돼야 할 재판의 논점을 흐리기만 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