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선진국 따라잡기식' 무기개발, 그만둘 때 됐다

박수찬 2018. 8. 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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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명언은 수천년이 지난 현대 사회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모방을 통해 끊임없이 연습을 하면 혁신적인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이 명언은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식품업계의 경우 특정 상품이 흥행에 성공하면 그와 유사한 상품이 수십개씩 쏟아질 정도다.

공군 F-15K 전투기가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채 이륙하고 있다. 타우러스시스템스 제공
방위산업도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황은 비슷하다.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위력을 지닌 신무기가 등장하면 선진국들은 이와 비슷한 개념의 무기를 만든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의 무기개발 추세를 주시하며 이를 모방한다. 냉전 시절 러시아가 처음 선보인 보병전투차가 서유럽, 미국을 거쳐 확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방은 개발 리스크를 낮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방위산업 분야에서 선진국의 사례를 모방하는 개발 방식은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적합하지만, 연구개발 기반이 갖춰진 환경에서는 ‘영원한 2등’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율곡사업 시절부터 지속된 추격형 개발전략이 최근까지 지속되면서 군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군이 도입한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F-15K 전투기에 장착되어 대전 인근에서 휴전선 이북을 타격할 수 있다. 타우러스시스템스 제공
◆무엇을 위해 개발하는지도 불확실한 공대지미사일

공군이 운용중인 독일제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유사한 수준의 국산 무기를 개발하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은 8100억원을 투입, 2021년까지 약 3년 동안 탐색개발을 거친 후 체계개발을 거쳐 2020년대 중후반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개발을 주관할 국방과학연구소(ADD)는 탐색개발과 관련해 지난 5월 국내 업체에 제안서를 발송했으며, 한화와 LIG 넥스원이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당초 이달 중 시제품 제작업체가 선정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발 실패 시 책임소재 등에 대한 문제 등으로 선정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 사업을 지지하는 측은 2020년대 중반부터 전력화될 한국형전투기(KF-X)에 장착할 무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부터 20여년 동안 쓰일 국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성능은 1998년 개발이 시작돼 2005년부터 사용된 타우러스 미사일을 앞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다. 원천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전략무기인 미사일 핵심 기술을 이전하는 나라는 없다”며 “타우러스 미사일 도입하면서 이전받은 기술과 미국제 사이드와인더, 스패로 공대공 미사일 기술 정도만 활용 가능한데, 이 기술들은 진부한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공군 F-15K 전투기에 탑재되는 항공무장들. 공군 제공
타우러스 제작사인 독일 타우러스시스템스는 타우러스 미사일을 축소해 F-16전투기에도 탑재 가능한 단축형 타우러스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장에 등장할 단축형 타우러스 미사일보다 성능 측면에서 앞서지 못한다면 8100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는 셈이다. 공군 내부에서 “미국제나 유럽제, 이스라엘제를 구매하는게 더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추격형 개발전략조차 제대로 답습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KF-X에 탑재할 경우 KF-X 개발주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의 협력이 필수다. 따라서 2016년 KF-X 개발이 본격화됐을 때 KAI와 함께 KF-X와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통합 기술 등을 함께 개발하는 전략을 취해 리스크를 낮춰야 했다는 지적이다. 국산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는 것은 한국형정밀유도폭탄(KGGB)외에는 전례가 없어 시행착오가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는 유럽 항공무장업체 MBDA가 전투기 개발에 참여해 공대공, 공대지 무장 개발 및 전투기 통합을 담당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K-2 전차와 파워팩 개발을 분리해서 진행했다가 전력화 시기가 계속 지연됐던 과오를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에서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KF-X에 탑재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2026년에 작전능력을 갖출 블록1에 장착하려면 개발 일정이 촉박하다. 2030년대에 등장할 블록2에 장착할 경우 개발과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 이는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군축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전투기에 탑재해 공중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소요될 수백억원의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개발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다.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

선진국 군대를 따라잡는 방식의 무기개발이 위험한 이유는 선진국 군대의 시도가 실패했을 경우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가 K-11 복합형소총 사격을 앞두고 총기를 점검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K-11 복합형소총이 대표적인 사례다. 5.56㎜ 소총과 20㎜ 공중폭발 유탄을 결합한 K-11은 1990년대 미군에서 개발했던 XM-29 소총의 컨셉과 거의 동일한 무기다. 미군과 동일한 수준의 소총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2000년부터 8년간 185억원을 들여 개발된 K-11은 등장 초기에는 “세계 최초의 복합형소총” “외국에서도 부러워하는 무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11년 10월과 2014년 3월 공중폭발탄이 총기 내부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0년부터 3년간 군에 납품된 K-11 900여정 중 200여정이 사격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사격통제장치가 부서지기도 했다. 방위사업청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결함 원인을 파악해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지난달 25일 K-11 52정에 대한 품질검사 도중 1정에서 비정상적 격발현상이 발생해 사격통제장치에 균열이 발생, 전력화 일정이 최소 6개월 지연됐다. 군은 현재까지 납품된 K-11 914정의 사용을 중지했다.

K-11의 거듭되는 결함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복합형소총 개발을 시도한 미국도 실패할 정도로 기술적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XM-29는 7㎏이 넘을 정도로 무겁고 부피도 커서 실용적이 않다는 지적을 받아 2004년 개발이 취소됐다.

미국 육군이 도입을 추진했던 XM-25 유탄발사기. 최근 공식 취소됐다. 미국 육군 제공
대신 등장한 것이 XM-25 공중폭발 유탄발사기다. 위력 부족을 이유로 유탄 크기를 20㎜에서 40㎜로 늘리는 등의 기술적 개량이 이뤄졌지만 일선부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게가 6.4kg에 달하는데다 유탄 36발까지 휴대하면 지나치게 무거웠다. XM-25를 휴대한 병사는 총을 쏠 수 없어 기존의 M203 유탄발사기를 선호하는 경향마저 나타났다. 여기에 기술적 문제가 겹치면서 미 육군은 최근 XM-25 프로그램을 공식 취소하고 예산을 다른 사업으로 전용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포기로 전 세계 군대에서 복합형소총을 개발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 군은 미국이 포기한 개념을 계속 유지하면서 K-11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당 가격이 1600만원에 이르는 비싼 총이 거듭된 결함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 프로그램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워리어플랫폼을 장착한 육군 장병들이 훈련장에서 전술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육군 제공
1개 분대에 2정씩 배치되는 K-11 대신 그만큼의 예산을 육군 소대 전력 강화에 투입했다면 어떨까. 1개 소대에 1억 가까운 예산이 주어진다면 일선부대가 정말로 필요한 무전기, 레이저 표적지시기, 야간투시경, 헤드셋, 무릎보호대, 정보처리 단말기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육군이 최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워리어 플랫폼을 조기에 구현할 수 있었지만, 군 당국의 선택은 20여년 전 미국이 추진했다가 실패한 SF 첨단무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이자 계륵(鷄肋)으로 전락한 채 남아있는 K-11이다.

모방을 거듭하면 안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모방만으로는 기술적 혁신을 이룰 수 없다. 미래 전장의 변화를 살펴 새로운 형태의 무기 개발을 기획해야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선진국의 첨단 무기 제원과 컨셉을 따라하는 것으로는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다. 방위사업청이 최근 국방개혁 2.0과 관련해 추격형 무기개발을 지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처럼 이제는 우리 생각과 능력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무기 개발을 수행해야 할 때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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