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에어컨 펑펑 트는 동남아 중산층, 벌벌떠는 한국 중산층

손덕호 기자 2018. 8.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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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에어컨 쓰는 동남아 중산층
펑펑 쓰고도 한국 요금 절반
"누진제,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김모(48)이사는 지난 2016년 6월부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금융사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다. 자카르타 중산층 주거지에 방 3개짜리 175㎡(53평) 아파트를 얻었다. 위도 4도인 열대 기후(연중 23~33도) 자카르타의 중산층 아파트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김씨 집도 에어컨이 4대다. 김 이사는 "1년 내내 에어컨을 틀어 네 가족들이 타국에서 더위 고생을 덜 한다"고 했다. 김씨네 집 지난달 전기사용량은 937kWh(킬로와트시), 전기 요금은 140만루피아(약 10만8000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937kWh 전기를 쓰면 한달에 22만원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심부 수디르만 지역. 사진 오른쪽 아래 무슬림 사원(모스크) 뒤로 고급 아파트, 고층 빌딩들이 밀집돼 있다./ 조선일보 DB

◇말레이시아 전기 요금은 얼마?
연중 23~33도를 유지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정의 전기 요금을 들여다봤다.
교민 A씨 부부와 자녀 2명이 거주하는 278㎡(84평) 아파트에는 방 4개와 거실이 있다. 방마다 에어컨이 1대씩 있고, 거실에는 무려 3대가 있다. 외출할 때는 당연히 전원을 끄지만 "전기요금 걱정 때문에 에어컨을 꺼 본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에어컨을 자주 켠다.

그래서 전기를 무려 한달에 1, 144kWh나 썼다. 지난 6월(24~33도)달 전기요금은 523링깃, 14만 3000원이 나왔다. 말레이시아는 전기요금이 우리나라에 비해 약 15% 싼 요금에 1000kWh가 넘는 구간에서도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폭탄’ 요금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1,144kWh를 썼다면, 최고등급 누진제가 적용돼 28만 8000원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요금의 두 배다. A씨는 "서울 살 때는 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전기를 많이 썼는데 누진제 걱정이 많았다. 말레이시아도 누진제가 있지만 워낙 요금이 저렴해 얼마나 써야 누진제가 적용되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다. 12개월 모두 여름이지만 부담이 없다"고 했다.

A씨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전기요금은 더 떨어진다. 부부 단 둘이 사는 교민 B씨는 방 4개, 면적 153㎡(46평)인 아파트에 산다. 에어컨은 방마다 있어 총 5개가 설치돼 있다. B씨는 "비가 와 습기가 차거나 날이 더우면 에어컨을 켠다. 거실과 부부 침실에 각각 1개씩 에어컨 총 2대를 켜는데, 많이 전기를 써봤자 한국 돈으로 3만~4만원쯤 전기요금을 낸다"고 했다.

◇한국의 전기요금, 경제력에 비해 과하다?
밤 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27일(서울)이나 이어진 서울에서 에어컨은 더위를 피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낮 기온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보다 7도까지 높았다. 그러나 에어컨을 가정에 들여놓은 여유 있는 가정에서도 전기요금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과연 한국 전기요금은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일까.

일단, 전기요금은 선진국일수록 비싸다는 것이 통념이다.
미국 뉴욕 퀸스에서 면적 96㎡(29평), 방 2개 규모의 아파트에 사는 변호사 백모(33)씨. 뉴욕 맨해튼의 로펌에서 일하는 백씨는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집에 많이 붙어있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엔 에어컨을 많이 틀지 못했다. 전기도 고작 330kWh를 사용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100.95달러(약 11만3500원)를 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절반 이하인 5만800원만 내면 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17년기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독일(1인당 GDP 5만달러)의 가정용 평균 전기요금은 1MWh(1000kWh)당 343.6달러(27만원)로 매우 비싼 편이다. 미국(6만2000달러)도 202.4달러(22만원)다. 우리나라는 109.1달러(12만원)로 영국,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만3000달러, 영국은 4만 4000달러, 캐나다는 4만8000달러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1인당 GNP 5만달러를 향해 가는 국가들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국민소득과 전기요금이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인도네시아(4000달러)는 1000kWh당 요금이 62달러, 1만2000달러인 러시아는 50달러다. 말레이시아(1만1200달러)의 93달러(2018년현재)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들 나라 요금이 싼 것은 ‘환경’ 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화력발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 석탄 수출국이자 가스 수출국이고, 러시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산유국 중 하나다. 산유국인 말레이시아도 화력 발전 비중이 높지만, 소비자 단가는 이들 국가보다는 비싼 편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누진제 등 전기요금 부과 체계와 민간 전력판매회사의 요금제 등에 차이가 있어 IEA가 추정한 전기요금은 실제와 다소 다를 수 있다"며 "IEA의 통계는 국제적인 비교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이게 최선?
탈(脫)원전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
‘2022년 원전 제로’를 선언한 독일은 2011~2017년 6년간 전기요금이 가정용 23%, 산업용 42%가 올랐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독일은 재생에너지 생산 비용을 소비자에 전가하고 있다. 각종 부담금과 세금이 많아 전기 요금이 비싸다"고 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재생에너지 부담금은 1kWh당 0.0688유로(약 88.2원)로, 전년보다 8.3% 증가했다. 가구당 전기요금은 지난해 또 다시 연간 22유로(약 2만8200원, 8.3%)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우리 전기요금은 앞으로 오를 일만 남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발전 비중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가정용 전기요금이 낮아질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전기 가격을 정부가 통제해 국민의 선택권이 제한돼 있다"며 "전기 판매 업체가 경쟁을 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 등은 다양한 가격대로 전기가 공급돼 소비자가 싼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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