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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 낙방, 10년 도전끝 합격..소년범 왜 경찰 되려 했나

김민욱 입력 2018.08.19. 05:01 수정 2018.08.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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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중 스님과 김모(36) 순경이 지난 16일 안성 영평사 경내를 걷고 있다. 소년원 출신인 김 순경은 10년 동안 22번 경찰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끝에 결국 지난해 합격했다. 김상선 기자


“가장 선한 직업, 경찰 포기 못 해”

‘2008년 1·2차 필기 불합격, 2009년 1·2차 최종 탈락, … 2017년 1차 필기 불합격, 2017년 2차 최종합격.’ 10년 동안 같은 시험에 스물한번 도전했다. 그리고 스물두번째. 마침내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6월 30일 경찰 공무원에 임용된 김모(36) 순경의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은 오직 하나의 시험에 든 시간이었다. 김 순경의 합격이 더 의미 있는 건 긴 시간 굴하지 않는 도전을 했다는 점 외에 한가지 더 있다. 그는 소년범(少年犯) 출신이다. 옛 충주소년원(현 자활연수원)을 출소한 김군은 경찰이 돼 충주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근무를 명 받았다. 소년범 출신의 경찰 임용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법의 심판을 받던 그가 법을 집행하는 일을 맡기까지, 변신의 과정은 긴 고통이었다. 실패가 반복되자 2011년 5번째 도전때부터는 가족들에게조차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밤에 일하며 공부할 돈을 모았다. 낮에는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천근만근인 몸으로 책상에 앉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끊었다. 문득 불합격의 원인이 과거 범죄전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괴로움과 좌절감에 허덕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직업으로서 가장 선(善)한 일은 경찰’이라는 신념이었다.

지난 16일 경기도 안성에 있는 사찰 영평사에서 김 순경을 만났다. 영평사는 10대 소년범 김군의 절망을 깨뜨리는 ‘울림’을 준 박삼중(전국교도소재소자교화후원회 회장)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다. 김 순경은 스님께 정복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익명을 요청했다.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리라

Q : 삼중 스님이 준 울림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A : “15년 전 전국 12개 소년원에서 선발한 17명의 모범 보호 학생이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 문화체험 기회를 가진 일이 있다.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당시 삼중 스님이 동행하셨는데 ‘너 한테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씀하셨다.”
2003년 7월 전국 12개 소년원에서 선발된 모범 소년원생들이 일본 문화체험에서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여객선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순경도 당시 충주소년원 모범 소년원생 자격으로 함께 했다. [사진 삼중 스님]

Q : 향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였나.
A : “그렇다. ‘세상에 악취를 풍기기보다는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다. (모범 소년원생이라고 하지만) 삶이 절망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신 지 몰라도 손가락질 받던 삶을 살던 나로서는 마음에 연꽃이 피는 듯했다. 삶의 전환점이 됐다.”
그가 감상에 찬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할 때 정작 곁의 삼중 스님은 “그랬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넌 안 될 가능성이 커"라는 편견을 극복하다

2003년 7월 27일 일본 후쿠오카로 출항하기 전 부산소년원 강당에서 ‘소년원 학생 일본 해외문화체험 발대식’이 열렸다. 당시 촬영한 사진에서 김 순경은 선한 눈 빛으로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이 해외문화 체험은 당시만 해도 ‘전례 없는’ 한·일 교류였다. 한국 부산의 자비사와 일본 후쿠오카의 남장원이 함께 후원하면서 성사됐다. 이들 단체는 “교화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혹시 모를 소년범의 일탈을 우려하던 양국 법무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당시 자비사 주지가 삼중 스님이었다.
경찰 제복 이미지 사진. * 기사 내용과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Q : 왜 하필 경찰이었나.
A : “직업으로서 가장 선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난 한때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나. 그런 과거를 벗어나고 싶었다. 소년원 출소 후 의무경찰에 지원했다. 경찰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 나도 인생이 걸린 문제니 깊이 알아봤다.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음주운전 전력만 있어도 안 되는데…, 넌 안될 가능성이 커’였다.”


인생 심연 보고 싶었던 방황기

Q : 과거 이야기 물어봐서 미안하다.
A :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했다. 2002년 존경하는 시인이 교수로 재직 중인 모 대학 문예창작과에 수석 입학했다. 곧 문학 열병을 앓았다. 방랑 아닌 방황을 하며 인생의 끝(심연)을 보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회의도 컸다. 2002년 11월 술에 취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돌로 부수려 했다.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혐의는 절도미수였다.”
김 순경은 당시 만 19세였다. 2007년 이전의 소년범 적용연령은 지금보다 한 살 많은 만 20세 미만이었다. 이에 그는 단기 소년원 송치처분을 받아 충주소년원에 수용된다.

Q : 21번이나 떨어질 줄 알았나.
A : “25살 되던 해인 2008년부터 준비했는데 10년을 내다봤다. 응시 나이제한이 35살이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연령제한이 완화되기는 했는데, 희망 고문이었다. 약속한 10년 끄트머리에 합격했다. 그 기간에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완전하며, 죄 많은 인간이었는지 깨달았다. 또한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도심 사찰에 핀 연꽃. 연꽃은 흔히 진흙속에서 피어도 고결함을 잃지 않는 꽃으로 비유된다. 김상선 기자.


운명의 마지막 면접장에서는...

Q : 마지막 면접에서 뭐라고 답변했나.
A : “그동안에는 ‘이번에 떨어지면 또 도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차 시험 마지막 면접에서는 ‘다시 응시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고 변하겠지만, 한가지 만큼은 끝까지 품겠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선의’다.”

Q :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 어땠나.
A : “그날 너무나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토록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경찰관으로서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단순히 소년원 출신이 경찰이 된 것보다, 다섯과목의 지식을 쌓는 것보다, 9년 10개월의 세월 자체가 큰 공부였다. 향기를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
김 순경이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 후 삼중 스님에게 선물한 시계. 김민욱 기자

김 순경은 합격 후 삼중 스님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15년 전 현해탄을 건너 올 때 삼중 스님에게 시계를 선물 받은 기억에서다. 시계 속에는 연꽃 잎이 만개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200만원도 되지 않은 첫 월급 중 1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영평사에 시주했다. 공교롭게도 영평사 생활관 거실에는 한 사형수가 그렸다는 ‘연꽃’ 그림이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

안성=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