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독립운동의 산실..'3·1중학' 건물 최초 확인

김도엽 2018. 8. 1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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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강점기 시절, 상하이에는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임시정부 산하 초, 중등 공립학교가 각각 존재했습니다.

이 가운데 중등교육기관인 3.1 중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는데요.

3.1중학이 사용했던 건물이 아직 상하이에 남아있는 것을 KBS 취재진이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교육 운동의 일환으로 초등 과정인 인성학교, 중등 과정인 '3·1중학'이 세워졌습니다.

인성학교의 기록은 충실히 남아있지만, 안타깝게도 3·1중학은 위치 조차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김용달/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 "임시정부의 초등공학은 공립 인성학교이고 중등과정은 공립 3·1중학이라고 하는 역사적 자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3·1중학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취재진은 일본외무성의 문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제가 본국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3·1중학의 설립 목적과 학생 수, 교원의 이름도 상세히 써놨습니다.

학교의 주소도 기재돼 있는데 프랑스 조계지내 '항경리'라는 곳입니다.

당시 지명 '항경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1920~30년대부터 학교였다는 3층짜리 건물이 한 채 남아있습니다.

옛 지도에는 이 자리에 '건명소학'이라는 학교가 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학교 교장선생님의 딸이 아직 건물에 살고 있었습니다.

[왕쥐앤/건명소학 교장의 딸 : "당시 부모님이 여기 오셨을때는 건명소학 개교 시기였습니다. 1930년 이후가 맞을 겁니다."]

같은 동네에 있던 3·1중학은 1930년대 초중반,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고, 곧이어 학생규모 100여 명의 건명소학이 새로 생겨났다는 겁니다.

3·1중학의 건물과 학생들을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깁니다.

아직 추가 검증의 단계가 남아있지만, 3·1 중학의 건물로 최종 확인될 경우 당시 공립교육기관에 대한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전망입니다.

다만, 이 일대가 곧 재개발 될 예정이어서, 주요 유적과 사료의 보존 조치를 취할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상하이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김도엽기자 (yop21@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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