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은 개인정보 넘기고, 정당은 빼내는 '선거 커넥션'

2018. 8. 2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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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 정보 빼내 선거운동
전 새누리 보좌진 ㄱ씨 폭로
"의원들 매일 연락처 확보량 물어
수단·방법 안가리고 수집 일반적"

"우리당 구청장이면 편히 구하고
민주당 소속이면 신중하게 구해
복잡한 입력과정 매크로로 줄여"

판세에 중요변수라 여야 모두 군침
백군기 용인시장도 커넥션 혐의
철저수사·정보관리 재점검 병행돼야

[한겨레]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서대문갑 지역 유권자 명부’에는 이 지역 유권자 전체인 13만1천여명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 앞자리가 적혀 있고, 7만4398명의 전화번호(전체 유권자의 56%), 4만8670명의 휴대전화 번호(전체의 36.6%)가 담겨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중요 정보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서대문갑 지역 유권자 명부’는 정치권이 일선 행정조직과의 은밀한 연계를 통해 유권자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빼내 선거운동에 불법적으로 활용한 정황을 보여준다.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관할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선거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백군기 경기 용인시장의 사례처럼, 지자체의 주민정보 관리 부실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개인정보를 빼낸 것이 서대문갑 지역만이 아니었다는 주장마저 제기돼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불법으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빼내 선거운동에 활용했다고 주장한 전 새누리당 당직자 ㄱ씨는 불법적으로 유권자 명부를 만드는 일이 다른 지역에서도 비일비재했다고 19일 폭로했다. “영감(의원)들이 ‘연락처 얼마나 확보했느냐’고 매일매일 물어요. 불법이든 뭐든 연락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선거 승리의 관건이거든요. 영남처럼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지역을 제외하고 접전이 벌어졌던 서울 다른 지역구와 충북 지역 등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권자 정보를 모으는 일을 했어요.” 그는 “구청장이 우리 당 소속이면 좀 더 편안하게 구했고, 민주당 소속이면 ‘시크릿 정보’로 취급해 신중하게 구했을 뿐이었다”며, 서대문 지역의 경우 “이성헌 전 의원 지역 사무실에서 보좌관들과 함께 유권자 명부를 만드는 방식을 논의했는데, 이 전 의원 쪽은 지역 동호회나 직능단체들한테서 회원 명단을 받는 식의 ‘반쯤 불법’인 방식과 ‘완전 불법’인 방식 등을 얘기하다가 완전 불법인 방식으로 구청에서 주민 명부를 빼 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연락처 확보가 선거 판세에 가장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수집의 유혹은 여야를 넘나든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백군기 용인시장은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5만여명에 이르는 지역 주민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백 시장이 불법적으로 구한 개인정보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해 일선 행정조직과 은밀하고 불법적인 결탁을 맺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ㄱ씨의 명부 작성에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활용됐다. “구청에서 가져온 것이니 절대 유출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ㄱ씨가 전달받은 주민 명부는 엑셀이나 한글 파일이 아닌 열람과 출력만 가능하도록 짜인 전용 프로그램에 담겨 있었다. ㄱ씨는 이 주민 명부를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복제해 가상 출력하는 형태로 저장을 한 뒤, 이를 또 다른 여러 명부와 대조해 하나의 파일로 다시 만들었다. 복잡한 입력 과정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단축했다. 매크로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작업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쓰지 않을 수 없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썼다”고 말했다. ㄱ씨는 “그런 일을 잘한다고 소문난 당직자들이 선거 때마다 여러 캠프에 불려 다녔다”고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유권자 명부를 확인한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전체 주민 명부가 엑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형태는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구청에서 열람할 때조차 목적에 한해 활용 동의를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가 선거운동에 이용됐다면 두말할 나위 없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다. 그동안 선거 기간 중 개인정보 수집은 지역 단체들이나 직능 조직들이 암암리에 각 후보 캠프에 회원 정보를 건네는 정도로만 알려져왔다. 전체 유권자 연락처를 알 길이 없던 각 후보 캠프에선 지역 유권자의 연락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물밑 전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법조계에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최은배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하더라도 명백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위중한 사건”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해서도 공공정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경위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명단을 유출한 구청의 누군가와 이를 넘겨받은 새누리당 모두 개인정보보호법과 선거법을 위반한 중대 사건”이라며 “공무상 비밀로 취급되어야 할 정보들이 행정기관과 정치권의 내통 대상이 돼버린 것이라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 관리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완 장나래 이정하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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