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 복지' 찾아.. 인천공항 들른 어르신 8만명 늘었다

김은정 기자 입력 2018. 8. 21. 03:04 수정 2018. 8. 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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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간 12만9000명 방문
폭염에 방치된 노인들에게 공공시설이 쉼터 제공한 셈

서울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던 지난 한 달간 인천공항을 찾은 노인이 작년보다 8만명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을 피하려는 노인들이 인천공항 대합실로 몰렸기 때문이다. 올여름에는 인천공항뿐 아니라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백화점·쇼핑몰·서점도 노인 피서객으로 북적였다. 대형 상업·공공시설이 이들에게 '냉방 복지'를 제공한 셈이다.

20일 공항철도에 따르면 서울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던 7월 16일~8월 16일 32일 동안 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공항을 찾은 65세 이상 승객은 12만9629명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4만6692명이었다. 기간 전체로는 8만2937명, 하루 평균 2592명이 늘었다. 폭염경보는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될 때 발령된다.

지난 13일 오후 폭염 더위를 피해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찾은 노인들이 나란히 휴식 공간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폭염경보가 이어진 한 달간 7만명 넘는 노인이 무료로 공항철도를 타고 제2터미널을 찾았다. 몇몇 노인들은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고 보안요원의 눈을 피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곽승한 인턴기자

65세 이상은 일반 공항철도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인천공항 대합실 내 온도는 25도로 일반 쇼핑 시설보다 시원하다. 노인들은 특히 올 1월 개장한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몰렸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한 달여간 7만1209명이 이용했다. 1터미널에 비해 한산한 데다 긴 의자, 대형 TV, 정수기 등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2터미널에서 만난 신경재(79)씨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1시간 30분 걸려 친구 셋과 왔다"며 "김밥과 떡, 약과를 싸 와서 종일 놀다 간다"고 했다.

인천공항의 한 편의점 직원은 "노인 손님들은 도시락과 삼각김밥, 안줏거리도 많이 산다"고 했다. 공항 보안팀 관계자는 "보안요원들의 눈을 피해 생수통에 소주를 담아 마시는 노인 피서객들도 있다"고 했다. 인천공항행 공항철도 객실에서는 여행 가방을 안 든 슬리퍼 차림의 노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KT 빅데이터 사업지원단이 KT 스마트폰 가입자를 대상으로 7월 15~28일 인천공항 내 유동(流動) 인구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이 기간 인천공항 대합실에 머문 60대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70대는 33% 증가했다. 20~50대 유동 인구는 5%가량 늘었거나 줄었다.

지하철이 연결된 서울 용산역, 롯데월드타워 등에도 노인들이 몰렸다. 지난달 16~20일 오후 1시 기준으로 용산역 내 65세 이상 유동 인구는 1만5213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09% 증가했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도 60대 이상 방문객이 작년 대비 36%, 70대 이상은 51% 늘었다. 유동 인구를 분석한 KT 관계자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노인층 유동 인구 증가가 두드러졌다"고 했다.

7월 전국 영풍문고를 찾은 60대 이상 방문객과 구매자는 전달보다 각각 8%, 9%씩 증가했다. 서울 영풍문고 종로본점에서 만난 윤모(63)씨는 "서점에서는 오래 있어도 남 눈치를 안 봐도 된다"며 "한 번 오면 5시간 정도씩 책을 읽다 집에 간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노인정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하지만 '텃세'가 심해 서점에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현대백화점 7월 방문자는 지난해보다 6.3% 증가해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늘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4.1%)보다 방문객 수가 더 많이 증가했다"며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더위를 피해 백화점을 둘러본 고객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선우덕 동아대 교수는 "노인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의 냉방 복지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공공·상업시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매년 폭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만큼 난방에 편중된 지원을 냉방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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