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그 많던 댓글 부대, 그들은 '기계'였다

우한울 입력 2018. 8. 21. 11:01 수정 2018. 8. 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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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KBS 탐사보도부는 정치권에서 벌어진 '여론 조작' 사실을 처음 확인해, 지난주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6년 전 여야 대선 캠프에서 자행된 일입니다. 2012년 하반기 한글로 된 트위터 빅데이터 9억 7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구체적인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정치권의 '댓글 기계' 존재, 그리고 그 추적기를 정리했습니다.

※ '댓글 기계'는 비유적 표현임을 밝힙니다. 사람이 직접 글을 올리지 않더라도 자동화된 기계적 방식으로, 온라인 여론 조작을 할 수 있도록 한 수법을 일컫습니다.

1.새누리당의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Tweeter for Android)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는' 탐사보도부가 포착한 새누리 쪽 댓글 기계 이름입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 대선캠프 외곽 조직, 서강바른포럼에서 제작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정확하게는 자동 '리트윗(RT·재전송) 기계'입니다. 사람 대신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특정 글을 반복적으로 리트윗을 하게 해줍니다.

‘Tweeter for Android’는 당시 널리 쓰이던 상용프로그램 ‘Twitter for Android’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교모히 이름을 바꾼 비밀 프로그램으로 확인됐다.


# '천만 RT' 역대 최대 규모 여론 조작

취재팀은 우선 기계로 돌린, 리트윗 양을 측정해봤습니다. 계산은 단순했습니다. 트위터 빅데이터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썼는지 '소스'가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분석은 소셜네트워크 전문 분석업체 '사이람'이 맡았습니다.

분석 결과는 가히 천문학적이었습니다.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로 올린 리트윗 글 수는 최대치가 천2만 8천456개로 확인됐습니다.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로 작성된 글은 8월 10일 처음 등장했다가 대선 전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넉 달 새 천만 개의 리트윗을 올린 셈입니다. 같은 시기 작성된 전체 트윗(6억 4천972만 개)과 비교하면 1.5% 수준입니다. 선거 전 넉 달 동안 작성된 트윗 글 100건 가운데 1건은 '새누리 측 기계'가 쓴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 작동 원리는 전형적 '매크로'?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작동됐을까. 취재팀은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의 흔적만 확인했을 뿐, 실제 프로그램을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와 내부 증언을 토대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에 의해 8분 30초 간격으로 작성되던 리트윗 글은 특정 시점 이후 25분 20초 간격으로 퍼 나르기를 시작한다. 시간 간격을 변경하도록 설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처 : 사이람)


그러던 중 분석 업체 '사이람'은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천만 리트윗'이 작성된 각 시각을 정밀 분석해보니, 같은 간격으로 반복돼서 나타나는 일종의 규칙을 확인한 것입니다. 댓글 기계는 같은 간격으로 리트윗 글을 올리다가도 특정 시점에 간격을 바꾸는 등 변화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이람은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 간격까지 변경하도록 설정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에서 사용되는 계정 대부분이 봇(bot·자동화된 계정)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습니다.

# 회원 조직 동원해 '폭풍 리트윗'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라는 이름대로 이 프로그램은 안드로이드 휴대전화에 설치됩니다. 매크로 운영에 관여한 서강바른포럼 내부자도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그는 "2012년 여름쯤, 회원 스마트폰에 트위터 포 안드로이드를 설치하게 했다"면서 작동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A라는 사람이 글을 올리잖습니까. 그러면 프로그램 안에 계정이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그 트윗 글에 대해서 리트윗이 한꺼번에 잡히는 거죠."(김 모씨/서강바른포럼 전 관계자)

이 증언을 바탕으로, 작동 원리를 추정해봤습니다. 스마트폰에 프로그램이 깔리면 스마트폰은 일종의 좀비 PC가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서강바른포럼 사무실에 있던 중앙 컴퓨터가 모든 스마트폰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서강바른포럼 회원 2,600여 명이 모두 깔았다면 회원 각각의 트위터 계정을 중앙에서 통제하면서 글을 퍼 나를 수 있는 겁니다.

불법 SNS 홍보 사실이 적발되면서 서강바른포럼 일부 책임자는 처벌당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매크로를 동원한 여론조작 여부는 수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매크로 여론 조작의 전모를 밝힐 핵심 디지털 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탐사보도부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현재 '새누리당 매크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시경 사이버수사대는 이 자료를 분석 중입니다.

2.민주통합당이 쓴 '트윗덱'(TweetDeck)

민주당 캠프 내 소속 당원이 캠프 홍보 글을 퍼 나를 때 활용한 프로그램입니다. 같은 이름의 영국계 벤처회사가 자체 개발한 '서드 파티 (third party) 프로그램'입니다. 서드 파티는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여기서는 트위터) 이외의 계열사나 다른 기업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트위터는 2011년 트윗덱을 인수했습니다.

당시 트윗덱은 여러 계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마케팅 도구로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민주당 캠프 관계자가 이른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 홍보에 쓴 것으로 탐사보도부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여러 계정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역시 분석의 출발은 트위터 빅데이터였습니다. 취재팀은 기계적 글쓰기 유형 중 동시 리트윗(RT)에 주목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정을 관리하면서 동일 시각에 같은 내용을 리트윗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2012년 대선 무렵 박근혜 후보 홍보 글을 퍼날랐던 이른바 '댓글 공작'에 동원한 같은 수법입니다.

사이람은 동일 시각에 같은 글을 두 번 이상 퍼 날랐던 그룹을 추려냈습니다. 이중 민주통합당 대선 캠프 홍보 글을 확산시킨 사례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의문스러운 계정 13개를 확인했습니다. 이들 계정은 사실상 한몸처럼 움직이며 민주당 캠프 홍보에 동원됐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고, 자동 트윗 방식으로 캠프에 유리한 글을 모두 2천300차례 퍼 날랐습니다.


# "가짜 유권자 100여 명 동원한 여론 조작"

동시 리트윗 계정들을 누가 운영했을까. 취재진은 추적 끝에 장본인을 만났습니다. 대선 기간 민주당 캠프 내 조직에서 단장을 맡았던 조 모씨로 드러났습니다. 조 씨가 몸담은 곳은 국민통합추진위원회로 당시 추미애 현 민주당 대표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공동 위원장으로 있었던 캠프 내 조직입니다.

취재진을 만난 조 씨는 자동 트윗 프로그램 트윗덱에 넣고 사용한 계정이 모두 백개 정도였다고 털어놨습니다. 계정은 캠프 안팎에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수집했다고 말했습니다. 각각의 계정이 실제 유권자인 것처럼 꾸며 다양한 사람이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습니다.

전문가들은 "조 씨의 행위 역시, 가짜 주권자를 동원한 여론 조작"이라며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조 씨가 조용히 홀로 벌인 일인지, 아니면 캠프가 조직적으로 벌인 일인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조 씨는 "스스로 벌인 일"이라고 말했고, 추미애 현 민주당 대표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3. 그리고 드루킹의 매크로...'댓글 기계' 더 있나?

'드루킹 매크로' 이외의 댓글 기계는 없었을까. 내부자 고발과 트위터 빅데이터에서 출발해 그 흔적을 찾아 나선 탐사보도부의 여정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물론 양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여론 조작'이라는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입니다.

문제는 탐사보도부가 밝히지 못한 댓글 기계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07년 한나라당이 댓글 기계 200개를 돌렸다"는 최근 드루킹 측의 폭로도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2012년 온라인 SNS 홍보가 전면 허용된 이후에는 더 기승을 부렸을 수 있습니다. '댓글 기계'를 막을 묘책은 아직 요원합니다. 드루킹과 정치권의 연결 고리는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겠지만, 그 사이 '제2의 드루킹'이 도사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한울기자 (wh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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