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여직원에 "단란주점 나가 수금하라"는 음저협

오원석 2018. 8.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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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국내 최대 음악 저작권 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수십년간 경리 업무를 해온 여성 직원에게 단란주점·유흥업소 같은 현장 저작권료 징수 업무를 맡기겠다고 해 갈등이 일고있다. 협회 측에서는 '자연스러운 직무 전환'이라는 입장이지만, 협회 안팎에선 "현 집행부가 여성 직원을 내보내기 위해 꼼수를 쓴다"는 비판이 나오고있다.

22일 음저협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5월 이사회에서 지방 지부 경리 담당 여성 직원 9명을 '공연관리' 업무에 재배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결정은 지난달에야 해당 직원에게 통보됐다. 공연관리는 저작권료를 내지 않은 단란주점이나 유흥업소, 노래방 등을 직접 방문해 저작권료를 납부하도록 독촉하는 업무다. 업무 특성상 늦은 오후(오후 5~11시)에 현장 방문을 한다. 업소 관계자와 고성을 주고받으며 승강이를 벌이는 일이 잦아 그동안 남성 직원들이 전담해왔다고 한다.

음저협 지방 지부의 경리 A씨는 "남성 직원들과 비교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안전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협회 측에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근속연수가 긴 경리 여직원들이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을 협회가 못마땅하게 여겨 사실상 일을 그만 두게 하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지방 지부 경리 여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2년이다.


협회측 "가상계좌 도입으로 경리 업무 불필요"

협회 측은 경리 업무가 줄면서 자연스레 직무를 전환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웅 음저협 지부사업국장은 “지난 2분기 감사에서 업무효율 증대를 위해 경리 직무 폐지 및 가상계좌 도입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여성 직원들이 나가도록 종용하거나 퇴사를 강요하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협회는 현장 업소로부터 계좌이체나 지로 등의 방법으로 저작권료를 징수해 왔다. 하지만 다음달부터 가상계좌 방식이 도입되면 기존 경리 여직원들의 업무였던 계좌 동명이인 분류, 지로 정리 등 업무의 90% 이상이 줄어든다는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여성 직원 B씨는 “가상계좌 저작권료 징수 방식이 도입된다고 해서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경리 업무 일부를 남성 직원들이 나눠 갖고, 남성 직원들의 공연관리 업무 중 일부를 여성 직원들에게 부과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우리를 몰아내려는 협회의 의도"라고 하소연했다.


내부에서도 "여직원 정리해고 꼼수" 지적

21일 진행된 협회 이사회에서도 내부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사회 후 감사 2명이 작성한 감사 보고엔 “(협회 측은) 가상계좌가 도입되면 경리 업무의 90%가 줄어 (경리직 폐지로) 6억원의 비용이 절감된다고 허위 보고하고 있다”며 "각 지부에서 가상계좌가 도입된다고 하여 경리업무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8월 21일 오후 진행된 이사회의 감사 보고서.
이사회에 참석한 익명을 원한 임원 C씨는 “집행부가 '여직원 월급이 많아서 추진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면서 "수십년간 협회에서 헌신한 분도 있는데 방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임원 D씨 역시 "여성직원 연봉이나 인성을 운운하기도 했는데, 사실상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서.


2012년에도 전직 시도…지노위 '부당전직' 판정

음저협에서는 앞서 2012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협회가 모 여직원을 공연업무로 배치하자 해당 여직원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 지노위는 ①여성이 하기 부적절한 업무이며 ②남성 직원만 배치하였던 점 등 2가지 이유를 들어 부당 전직이라고 판정했다.

음저협은 저작권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관리·감독을 받는 신탁단체다. 지난해 12월 작곡가 출신인 홍진영 회장이 23대 회장으로 취임해 협회를 이끌고 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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