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조 쏟아붓고도 출산율 최저..13년간 헛돈 저출산 대책

이유섭,연규욱 입력 2018. 8. 22. 17:54 수정 2018. 8.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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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료 집중 지원 헛발..저출산예산 패러다임 바꿔야

◆ 1명도 안낳는 한국 ◆

152조8000억원. 참여정부 후반기인 2006년부터 올해까지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 관련 예산 규모다. 내년도 저출산 예산은 올해보다 3조원 넘게 늘어나 사상 처음 연간 3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153조원에 30조원을 더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13년간의 데이터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정부는 2005년 당시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09명을 기록하자 부랴부랴 저출산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갔다. 목표는 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매년 2조~7조원씩 재정을 투입하자 출산율이 1.3명(2012년)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정작 연 20조원 넘게 저출산 지원을 하면서부터는 출산율이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출산율 0명대'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정부의 돈 씀씀이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는 대체 어디에 저출산 지원 자금을 쓴 것일까. 지난해 정부가 쓴 23조7703억원 중 가장 많은 11조1283억원이 맞춤형 보육에 투입됐다. 만 3~5세 자녀 유아학비·보육료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사업과 0~2세 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0~6세 아이를 가정에서 키우면 수당을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 지원 사업에도 1조원 넘게 들어갔다. 그 외 대학생 자녀에 대한 지원정책으로 구성된 교육개혁에 4조2276억원, 신혼부부 주거지원에 3조5582억원이 지난해 사용됐다.

"출산율이나 출생아 수가 아닌 '2040세대 삶의 질 개선'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밝힌 문재인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과거 대책과의 차별화를 꾀하기보다는 재정 투입에만 집중한다. 지난달 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대책을 보면 기존 내용을 반복하면서 지원을 확대하는 게 대부분이다. 유급출산휴가 확대, 아이돌보미 지원 대상 확대,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 급여 상한액 인상,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이 모두 그렇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대책을 만드는 정책 결정자들이 핵심은 건드리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출산과 결혼을 꺼리게 만드는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현재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보육료 지원 등 현금성 지원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었다"며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고비용 문제를 해소하고, 학력·성별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자녀를 낳을 유인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 원장은 "유럽 국가는 출산 지원책뿐 아니라 세금 등을 통해 자녀가 많을수록 부담이 늘어나는 부분에서 철저히 다자녀 가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오면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80가지 백화점 식 저출산 대책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다자녀 지원 대책은 주택 분양과 임대주택 가점제도 등 손에 꼽히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저출산 예산이 선심성 성격을 띠다 보니 자금 집행에서 정교함이 떨어지고, 정작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돈이 안 가는 현상도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가정양육수당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정양육수당을 받은 아동을 연령별로 나눴을 때 만 0~2세 영아가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가정양육수당은 0세 월 20만원, 만 1세 월 15만원, 만 2세 월 10만원씩 지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예산처는 "만 0~2세 영아는 가정양육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가정양육수당액 규모가 크지 않아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현행 가정양육수당은 개인양육지원서비스 이용 시 지불하는 비용의 최대 31% 정도만을 보전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2013년 도입된 이래 동일 금액을 지급하고 있어 가정양육수당의 체감 실효성이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국회예산처는 덧붙였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10년간 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단이 애당초 지나치게 보육 중심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정책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저출산 대책에 대한 지출구조 혁신을 과감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부처별로 분산된 출산 지원 대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작년에는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 등 8개 부처가 저출산 예산을 썼다. 부처별 예산 쏠림 현상도 심하다. 복지부·국토부·교육부·고용노동부 등 4개 부처가 전체 예산 중 95.4%(23조7702억원)를 사용했다. 여성가족부·중소벤처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머지 1조983억원을 쪼개서 썼다.

[이유섭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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