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노인 분노에 "어휴, 저 틀딱" ..'혐로' 키우는 소통단절

이해진 기자 2018. 8.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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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욱해서' 폭발하는 앵그리 올드]③공공장소서도 '버럭', 2030 "노인포비아 걸릴 지경"..살아온 경험 달라 충돌 불가피..사회공론화 장 되는 SNS '불통' 한 몫..노년, 사회경제적 지위 낮아지며 불안감↑

[편집자주] 노인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노인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길가에서 공공장소에서 갖가지 이유로 격분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젊은층은 이런 노인을 이해 못해 세대간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이들은 왜 분노하는 것일까. '앵그리 올드'의 현상과 원인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봤다.

대학생 박모씨(25)는 최근 한 범죄피해자지원기관에서 상담을 받았다. 몇 달 전 지하철에서 새치기하는 노인에게 항의했다가 험한 욕설과 함께 지팡이로 두들겨 맞은 게 트라우마로 남아서다. 경찰 조사에서 "순간 욱해서 그랬다"고 사과한 노인을 선처한 후에도 박씨는 대중교통에서 큰소리를 내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공장소에서 고성을 지르거나 분노를 쏟아내는 노인들을 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은 싸늘하다. 소셜미디어에는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노인들을 찍은 영상이 공유되고 ‘노인충’(노인+벌레), ‘틀딱(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이란 비하 표현들이 쓰인다. 이른바 '혐로'(노인혐오, 嫌老)다.

5세 아들을 키우는 이모씨(34)는 아이를 키우면서 '노인포비아(phobia·공포증)'에 걸릴 지경이다. 임산부 시절 지하철에서 자리를 찾아 앉으면 노인들에게서 '애 가진 게 대수냐'는 소리를 기본으로 들었다.

작년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로 신도림역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할머니와 대거리도 했다. 사람들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한 할머니가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들이 서 있어도 양보하지 않는다", "애들은 걷게 해야지" 등 이씨 면전에서 큰 소리를 쳤고 참다 못한 이씨도 "나 역시 줄 서고 엘리베이터에 탔다"고 맞받았다.

이씨는 "호통치는 노인을 말리는 노인들도 '세상이 변한 걸 모른다'는 식으로 달래는데 이것도 기분 나쁘다"며 "결국 젊은 세대가 문제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문모씨(31)도 종종 노인의 과격 행동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문씨는 "얼마 전 집 근처 시장에서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길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며 분풀이하는 걸 봤다"며 "오죽 답답한 일이 있으면 저러실까 싶다가도 상스럽고 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많은 청년들이 노년층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로 인식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3월 발간한 ‘노인인권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청년(19~39세)의 81.9%가 "노인·청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다. 또 청년의 88.5%가 "노인·청년 간 대화가 안 통한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노년층 비율(51.5%)의 1.5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젊은 층과 노년층이 중시하는 삶의 가치가 전혀 다른 것이 심리적 괴리를 낳는다고 분석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 노년층은 국가발전·충효와 같은 절대적 가치를 인생의 모토로 삼아온 세대인 반면 젊은층은 우리사회가 빠르게 다원화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세대로 자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두 가치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젊은층은 노년층을 '고루하다'고 생각해 소통하지 않으려 하고 노년층은 이러한 무시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 분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년층과 젊은층의 소통방식이 현격히 달라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IT(정보기술) 발달로 젊은 세대에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그들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다른 세대와 단절은 오히려 심해져 노인들로서는 그들과 대화에 낄 수 없다"며 "촛불집회,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등 최근 사회적 이슈들 모두 SNS를 통해 활발히 이야기 됐는데 노인들은 사회적 공론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 스스로 노인혐오 정서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젊은세대 안에서도 벌써 더 어린 세대가 윗세대를 '젊은꼰대'라고 부르는데 (통상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아왔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15년만 차이 나도 세대갈등이 있을 수 있다"며 "젊은 세대가 마음을 열고 노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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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기자 hjl1210@,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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