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유와 성찰]위력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 입력 2018.08.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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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난생처음 논문심사를 받기 위해 긴장된 마음으로 복도에 앉아 있던 그날을. 심사를 맡은 교수들이 해탈에 재차 실패한 부처 지망생들처럼 앉아 있던 그 대낮의 연구실을. 자, 자네 논문을 한번 간략하게 요약해보게. 요약이 끝나자 몇 가지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했고, 난 곧 깨달았다. 이 선생님들께서 내 논문을 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선생이 논문을 채 다 읽지도 않은 채 심사를 하려 드는 것은 학생이 논문을 채 다 쓰지도 않고 심사를 받으려 드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웃는 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한일합병의 순간에도 시간은 유유히 흘렀던 것처럼,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목례를 하고 걸어 나왔고, 마침내 논문은 심사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이날의 일은 오랫동안 수치의 기억으로 남았다. 선생님들에 대한 분노의 기억이기 이전에 그 과정을 그렇게 치러냈던 자신에 대한 수치의 기억으로. 그때 나는 다소곳이 앉아 있기보다는 앞에 놓인 탁자를 당수로 쪼개며, “선생님들, 논문을 읽지도 않고 심사한다고 여기 앉아 계실 수 있는 겁니까!”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목젖을 뽑아 줄넘기를 한 다음에, 창문을 온몸으로 받아 깨면서 밖으로 뛰쳐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학교 운동장에서, 벌거벗고, 흙을 주워 먹으며, 트랙을 뱅글뱅글 돌아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안의 광인을 봉인 해제하기는커녕,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충실하게 학생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것이 수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왜 웃는 돌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었던 것일까? 예정에 없이 징집되지 않기 위해서 일단 심사에 통과하고 봐야겠다는 계산을 순간적으로 해낸 것일까. 아니면, 저 사람들하고 원수지고 나면 평생 학계에서 밥 빌어먹기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선생님들이 논문을 읽지 않고 저 자리에 나와 앉아 있다는 것은 나 혼자의 판단에 그칠 뿐, 그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논문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심사에 임할 정도의 형편없는 교수의 학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생각도 그 현장에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서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여, 논문심사라는 부실한 역할극을 완성했다.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는, 인생이라는 극장 위의 배우들이 이처럼 별생각 없이 자기가 맡은 배역을 수행한다. 당시 교수들도 자신이 위력을 행사하고 있으리라고는 새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직접 명령할 필요도 없다. 니코틴이 부족해 보이면, 누군가 알아서 담배를 사러 나간다.

그 시공간이 일상적으로 떠먹여 주는 무기력을 더는 삼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 유학 도중의 어느 날, 방문학자로 와 있던 한국의 유명 대학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읽어보고 견해를 말해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나는 논문을 읽고 그 논문에 대한 이견을 명랑하게 개진했다. 그런데 내 견해를 들은 그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화를 내며 반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를 냈고, 분위기는 창난젓이 되었다. 그는 화를 냈을 뿐 내 의견에 어떤 반론도 하지 않았기에, 내 견해에 대해 화를 낸다기보다는, 논문 찬양극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는 위력이 잘 작동할 때보다는, 위력이 자신의 실패를 절감할 때 나타나는 징후이다. 그의 분노는 국내에서는 통하던 위력이 무력해진 것을 깨달은 자의 증상으로 보였다.

그러면 위력에 저항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내가 명랑했던 때 나는 외국에 있었지만, 한국에서 어느 대학원생 하나가 원로교수의 위력에 저항했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당시 등록금 명세서에 보면 ‘개인 지도비용’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지도교수와 학생 간에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지도를 비용으로 계산하는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느 날 교정을 걷던 원로교수를 불러 세우고는, 당신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지도한 적이 단 1분도 없는데, 왜 이 돈을 받습니까, 라고 따졌던 것이다. 이 흥미로운 질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론을 맺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대학원을 그만두었고, 지금은 남쪽 지방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정치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