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소년 송유근 "학위 따러 다른 대학 안 가 ..새 논문으로 심사결과 오류 증명하겠다"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오피니언 팀장 2018. 8.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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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사논문 탈락 후 군 입대 앞둔 ‘천재소년’ 송유근

졸업 연한인 8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수료’ 상태로 이달 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를 떠날 위기에 처한 송유근씨가 지난 16일 경기 구리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천재소년’으로 유명한 송씨는 “2016년 이후 지도교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7년 재학한 것과 같다”며 “UST에 재학 연한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졸업 연한 8년 넘겨 박사과정 ‘수료’

‘천재소년’으로 유명했던 송유근씨(21)가 박사학위 취득에 실패하고 8월 말 학교를 떠난다는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다. 여섯 살에 대학 수준 미적분을 깨치고 초등학교 6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친 후 검정고시를 거쳐 아홉 살에 대학생이 됐던 그였기에 파장은 컸다. 2009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천문우주과학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한 그는 졸업 연한인 8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결국 ‘수료’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미국 천문학회지인 천체물리학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ApJ)에 발표한 논문이 표절 의혹에 휘말리면서 그해 논문이 공식 철회된 후 닥친 그의 두 번째 시련이다. 송씨는 “표절 논란으로 2016년 초 지도교수가 해임됐고 이후 줄곧 독학했기 때문에 UST에서 교육받은 기간은 7년이므로 학기를 연장해 논문 재심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UST 측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오는 12월엔 군에 입대한다.

지난 16일 경기 구리시 자택에서 송유근씨를 만났다. 180㎝의 훤칠한 키에 얼굴엔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그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으로 보였지만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UST의 입장은 완고해요. 규정상 송유근씨를 받아들일 명분이 없다고 합니다.

“2016년부터 지도교수가 없어 연구와 논문 지도를 받지 못했어요. 2009년 입학했으니 UST에서는 7년만 전공교수 밑에서 교육받은 거예요. 학칙에 따르면 총장이 인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2학기 연장이 가능하다는 규정도 있어요. 그럴 경우 1년을 더해 9년간 재학할 수 있는데, 저는 사실상 7년간 재학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 이의 제기를 했나요.

“일단 재학 연한 연장 신청서를 UST에 제출했습니다.”

- UST가 끝내 재학 연한 연장을 허락하지 않아 박사학위를 못 받고 학교를 떠난다면 아쉬움이 크겠어요.

“저는 박사학위를 받자고 천체물리학을 시작한 게 아니라 밤하늘이 궁금해서 시작했기에 학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로서 논문을 쓰고 저널에 투고해 게재되는 데는 박사학위 소유 여부가 크게 상관이 없어요. 과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완성되면 (박사학위 청구 논문) 심사결과가 잘못됐음을 증명할 수 있어요.”

-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어떤 건데요.

“한마디로 이번에 UST에서 불합격 처리한 학위논문의 후속편이에요. 빠르게 회전하는 블랙홀들의 근처에서 나오는 감마선(y-rays) 복사에 관한 내용이에요.”

- 지난 6월에 있었던 박사학위 청구 논문 심사에서 불합격된 이유는 뭔가요.

“UST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어요. 블랙홀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청구 논문은 작성 단계에서 외국인 학자 5명과의 토론과 리뷰 과정을 통해 제가 제1저자로서 자격을 검증받았고, 그 결과로 그분들이 제 논문의 공동저자로 서명하셨어요. 191년 된 영국의 왕립천문학회 월보(MNRAS)의 검증과정을 거쳐 논문에 어떤 오류도 없음이 입증돼 지난해 10월 공식 게재됐고요. 그런데도 그 논문이 이번 학위 청구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거예요.”

- 보도에 의하면, 논문 심사 때 송유근씨가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해 불합격 처리됐다고 해요.

“논문 심사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빼면 실제 심사는 40분 정도였어요. 충분한 심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심사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일부 질의는 제 논문과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논문의 오류나 작성과정에 흠이 있다면 심사위원회는 학생의 다음 연구를 위해서라도 그 이유를 밝히는 게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송유근씨가 16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최근 박사학위 청구 논문 심사에서 불합격된 것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UST 학칙과 논문을 보여주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2년 전부터 지도교수 없어…학교에 ‘재학 연한 연장’ 신청 밤하늘이 궁금해 천체물리학 공부, 박사학위에 연연 안 해

- 12월에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 알아요. 입대하면 2년간 연구를 하지 못할 텐데요.

 “예전부터 많은 분들이 저도 군대에 가냐고 물었는데, 그런 대화가 슬프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열강에 둘러싸여 있고, 휴전선 지역은 지구상에서 단위면적당 군대가 가장 많이 집결된 장소예요. 이런 여건에서 병역의 의무 수행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군 복무 중에도 자유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군대에 꼭 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은데, 현역으로 입대하는 건가요.

“네. 2년 전에 신검(신체검사)을 받았고, 12월24일 강원도 철원 6사단 신병교육대로 들어가요.”

- 부모님하고 처음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것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사실 대만에서 8개월간 혼자 지낸 적도 있고요.”

- 앞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다른 대학의 학위 과정에 입학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계획이 있나요.

“학위를 위해 다른 대학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 이제 성인인데, 앞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고요.

“나중에 생각해봐야죠.”

그의 ‘천재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4년 일곱 살 때(11월생이어서 당시 언론은 만 6세로 보도했다)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대학 수준의 미적분 문제를 풀어낸 그는 정보처리기능사 시험과 정보기기운영기능사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여덟 살에 인하대 자연과학계열에 입학하자 대학 측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영재교육을 지원할 전담팀을 가동시키겠다며 그에 대한 각종 혜택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강의실 교육이 재미없다”며 2년 만에 자퇴한 후 2009년 열두 살에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컴퓨터공학 학사를 취득하고 같은 해 UST 한국천문연구원 캠퍼스에 입학했다. 대중은 또 열광했고, 언론은 석·박사 통합과정을 거치면 최단 3년 안에 박사학위 취득이 가능해 그가 이르면 2012년 전반기, 열다섯 살에 국내 최연소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UST는 천문연 등 전국 32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소가 참여하는 국가연구소 대학원이다.

송유근씨는 2005년 4월 8세 나이로 경기도 남양주시 심석초를 졸업(왼쪽)하고 같은 해 인하대 2학기 수시모집에 국내 최연소 대학생으로 합격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UST에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일단 강의실에서 벗어나서 좋았어요. 학교는 커리큘럼에 의해 짜여진 공부만 했다면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제가 원하는 저만의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제가 원하던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 왜요.

“안 봐도 될 일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냥 그렇게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인하대 다닐 때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공부 또는 연구만 했습니까. 동아리 활동은 안 했나요.

“인하대에 다닐 때는 응원단 ‘아쎄스’에서 드럼을 쳤어요. 아홉 살인 저를 데리고 술집을 갈 수가 없으니까 동아리 활동이 끝나면 형, 누나들이 피자집에 데리고 갔어요. 거기서 1차를 한 후 기숙사에 저를 데려다준 후에 2차를 갔죠. 대학축제에서 연주도 했어요.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가서는 축구모임을 했고, 밴드도 잠깐 했어요.”

- 축구를 좋아하나봐요.

“그땐 그냥 운동하고 싶어서…. 열다섯 살부터 2년 정도 했어요. 최근엔 연구하느라 전혀 못했고요.”

- 아버지 말씀으로는 송유근씨가 어릴 때부터 귀가 발달돼 있어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드럼도 하게 됐고, 또 한때는 록에 빠져 지냈다고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클래식 공연에 자주 데리고 가셨어요. 항상 좋아했던 악기는 뒤쪽의 팀파니였어요. 아빠가 낙원상가에 데려가 스틱을 사주셨는데 북 치는 게 너무 좋았어요. 밴드활동을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록은 10대 초중반 때, 그 격렬함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그리 좋아하진 않아요.”

- 그럼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

“듣는 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데, 요즘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이에요. 멜로디도 좋지만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붙인 노랫말이 굉장히 좋아서 연구하다 짬짬이 시간이 나면 혼자 부르곤 해요. 특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로 테너 발데마르 크멘트가 불렀던 도이체그라모폰 1962년 앨범 버전을 좋아합니다. 또 요즘엔 드럼 말고도 기타를 독학으로 배워 에릭 크랩튼의 ‘티어스 인 헤븐’을 포함해 몇 곡 정도 연주할 수 있게 됐어요.”

UST의 천문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합격한 2008년 12월 노트북을 이용해 MIT대학교 월터 르윈 교수의 전자기학 강의를 듣는 모습(왼쪽)과 2009년 드럼을 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논문 표절 논란 후 ‘내게 명예욕 있지 않나’ 반성도 나만의 길 걸어왔고, 평생 연구자로 폭넓게 공부·탐구할 것

잇따라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송씨에게 2015년 첫 위기가 닥쳤다. 미국 천문학회지인 ApJ에 그해 10월 발표된 ‘선대칭, 비정상 블랙홀 자기권’이라는 제목의 그의 논문이 표절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익명의 한 누리꾼은 해당 논문이 송씨의 지도교수이자 제2저자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의 2002년 학술대회 발표자료(Proceeding)를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박 연구위원은 “일반인은 표절로 의심할 수 있지만 유근이가 유도해낸 편미분방정식 부분은 이 논문의 핵심이며 이는 의미있는 학문적 성과다. 저널에서도 이를 인정한 것”이라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논문 투고 과정에서 심사자에게 발표 자료에 대해 이미 알렸고, 인용이 빠진 이유는 심사자와 논문에 표기할 인용자료 범위를 SCI 논문으로 한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ApJ가 논문을 철회하기로 결정하면서 송씨는 이듬해 2월 예정된 박사학위 취득도 불가능해졌다.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제1저자 논문 1편 이상’이라는 학위 취득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UST는 책임을 물어 2016년 초 박 연구위원을 해임했다.

- 2015년 ApJ에서 논문 철회 조치가 결정됐을 때 좌절이 컸을 텐데요. 어떤 심경이었습니까.

“미국 천문학회지에 게재된 제 첫 논문이라 굉장히 소중했지만 철회됐다고 해서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어요. 제 논문의 본질적인 내용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어떤 학자도 제 논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 박석재 연구위원이 해임되고 나서부터는 지도교수 없이 독학했다고요.

“박 교수님이 해임되신 후 1년 가까이 지도교수 없이 지내다 2017년 다른 분이 지도교수를 맡으셨어요. 하지만 그분은 제 전공인 블랙홀이론천체물리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관측을 하는 전파천문학자여서 애초부터 오직 행정적 일만 수행키로 하셨어요. 그러니까 실질적인 지도교수님은 계속 없었던 거예요.”

지도교수 부재에 대해 UST 관계자는 지난 23일 “학교에서도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주려 했지만 워낙 이름이 알려진 영재인 데다, 다른 교수가 오랫동안 지도하던 학생을 막바지에 맡는 데 대해 모두가 부담스러워했고, 무엇보다 한국에는 송유근씨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 지도교수도 없이 어떻게 혼자 공부했나요.

“작년 초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천문학회에 혼자 찾아갔어요. 그곳에서 대만의 아카데미아 시니카에 소속된 외국인 학자를 만났고 그분의 제안으로 작년 4월 대만으로 건너가 8개월간 함께 연구하면서 MNRAS(영국 왕립천문학회 월보)에 논문을 공동발표했어요. 학회에서 만난 또 다른 외국인 학자도 같이 논문을 쓰자고 하셔서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고요. 이제 제가 공동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신분으로 대만에 머물렀나요.

“UST는 저를 대만으로 초청한 외국인 학자분을 저의 지도교수로 위촉해주겠다고 당초 약속했는데 결국 해주지 않았어요. 선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어요. 다만 출장 형식으로 항공료와 일비는 대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카데미아 시니카에서 방문자 등의 자격을 얻지 못해 자유롭게 연구소를 출입할 수 없어 연구소 꼭대기층에 있는 도서관에만 있어야 했어요. 저를 아카데미아 시니카로 초청한 분이 찾아오셔야만 토론이 가능했어요.”

- 논문 표절 논란 이후 계속 힘든 시간을 보냈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저를 대만에 초청한 학자께 많이 배웠거든요. 또 돌이켜보면 이전까지 제 마음 한구석에 명예욕이 있지 않았나 반성도 했어요. 2015년 ApJ에 논문이 받아들여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10대 박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박사가 됐다면 제게 외려 재앙이 됐을 거예요. 그다음에 또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욕심에 눈이 어두워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사건 이후 1년간 그 논문의 출발이 됐던 선행연구들부터 다시 읽으며 평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 UST 한국천문연구원에서 9년을 보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수학이나 물리학 등의 기초 이론들을 차근차근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했죠. 힘들지는 않았나요.

“알면 알수록 더 부족함을 느낄 뿐이지,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수십년 더 연구할 것이고, 길지 않은 인생이긴 하지만 9년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인하대, UST는 물론 정부도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영재인 송유근씨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지만 영재를 키울 시스템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어요. 당사자 입장은 어떤가요.

“영재는 길러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진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저절로 드러난다고 해요. 영재가 있다면 그냥 그의 앞길을 막지만 말아주면 좋겠어요.”

- 선진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면 상황이 지금보다 나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국적을 바꿔서 거기서 살면 개인적으로 잘 살 수는 있겠지만 저는 한국의 영재교육 시스템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기초과목을 배워 연구자가 되는 과정을 코스워크(coursework)라고 하는데 교과과정과 서적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합니다. 사실상 독학으로 코스워크 과정은 해결할 수 있어요. 그 뒤는 학자가 돼 논문 쓰는 것인데, 저는 논문을 썼고 또 쓰고 있기 때문에 유학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송유근씨가 16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스마트폰 없으니 느긋해…이젠 또래 친구 사귀어보고 싶어 기회 된다면 선배로서 후학들에게 도움 주고 싶어

어려서부터 ‘특별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에게는 ‘또래’의 개념이 자리 잡을 기회가 없었다. 인하대, UST에 들어가서도 자신과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형, 누나들과 함께 공부했다. 친구들과 장난치고 싸우고 화해하고 교감하는 시간의 부재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 현재 동년배 친구가 있나요.

“이제 만들어보려고 해요. 사실 제가 갔던 기관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도와주셨어요. 인하대에서는 대학 옆 작은 초등학교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 보내 또래들과 놀게 하고 예체능도 같이 하게 해줬고, UST에 입학했을 때도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또래들과 어울리게 배려해주셨어요. 그래서 당시엔 친구를 잠깐 사귀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못 만났습니다.”

- 또래 친구와 함께한 추억도, 속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글쎄요. 그냥 저는 언제나 제 공부와 연구에 바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안 해봤던 거 같아요. 아무리 나이차가 있어도 언제나 학우는 있었으니까요. (잠시 생각하더니) 제게는 울타리이면서 친구같은 엄마와 아빠가 계세요. 아무래도 깊은 이야기는 부모님이 잘 알고 들어주시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바빠서 저에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주지 못하잖아요.”

- 친구가 부모님뿐이라면 외로울 것 같은데요.

“외로움을 느껴야 학자로서 뭔가 이론을 만들든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내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실험(생각하는 실험)이 많잖아요. 깊이 있는 생각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혼자 있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연구나 어떠한 주제에 대해 꼭 필요한 토론은 사람들과 많이 해요. 일상적 이야기를 잘 안 할 뿐이죠.”

-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은 있나요.

“없어요.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 휴대폰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전화할 곳이 많지 않고 저한테 전화를 걸 사람도 별로 없어요. 그리고 스마트폰이 있으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잖아요. (인터넷이 연결되니) 모든 것을 1초 만에 해결할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것 또한 기다림, 느긋함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해외에 나갈 때는 아빠가 전화기를 빌려주셔서 매일 화상통화를 했어요. 휴대폰이 필요없다까지는 아닌데 저의 경우 필수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천재소년으로 어려서부터 세상의 큰 주목과 기대를 받았어요. 본인에게는 무거운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부담감은 없어요. 저는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갔었고, 여전히 안 가본 길을 가야 하기에, 그리고 안 가본 길에서 끝장을 내야 하기에 세상의 주목과 기대에는 의미를 두지 않아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4년을 16년간 다니는 길보다, 불필요해 보이는 과정은 건너뛰고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겠다고 선택한 사람은 저예요. 저는 앞으로도 평생 동안 연구자로서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공부하고 탐구할 생각입니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던 그가 이 이야기 끝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송유근씨가 16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하고 싶은 공부와 바라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천재소년으로 주목받지 않고 보통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았다면, 지금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다 각자의 길이 있고, 저는 저만의 길을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롤모델이나 평소 부럽게 생각하는 인물은 없습니까.

“어릴 때는 과학자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동경한 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커서는 제가 저 스스로를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어릴 적 제가 좀 부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근심 걱정 없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임했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졌으니까요. 골치 아픈 일도 있고….”

- 꿈은 뭔가요. 어렸을 때 밝힌 것처럼 여전히 아인슈타인과 같은 성과를 남기는 물리학자가 되는 건가요.

“아니에요. 할 일이 많아서 저는 좌절할 시간도, 꿈꿀 시간도 없어요. 학자로서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할 겁니다.”

- 성인이 된 ‘중국의 천재소년’ 해리 셤 마이크로소프트(MS) 아시아연구소장(현 MS 수석부사장)을 아홉 살 때인 2006년 만났었죠. 그는 당시 송유근씨에게 “천재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긴 인생에 빨리 갈 필요 없다. 여유를 갖고 느리게 재미있는 것들을 찾으라”고 조언했어요.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이야기가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빠르고 느리고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삶을 100살로 친다고 해도 학자로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봐야 70~80년이에요. 우주의 역사나 스케일로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연구해본들 얼마나 알게 될까 생각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탐구예요.”

- 천체물리학 말고도 관심 있는 분야가 있습니까.

“많아요. 인문학, 이를테면 철학도 관심 있어요. 아직 공부는 못해봤지만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세상에 천체물리학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 송유근씨가 바라는 삶은 어떤 것인가요.

“(잠시 생각하더니) 제가 바라는 삶은 그간 제가 살아온 삶으로 대신 답해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을 3번째 즐거움으로 꼽았다고 하는데, 저도 후학들에게 선배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당장 하고 싶은 일은 군 입대 전 부모님과 여행하는 것과 어릴 때 저를 키우신 거창 외할머니 산소에 가는 거고요.”

시계를 보니,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어느덧 3시간30분을 넘어섰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명했다. “아 윌 비 백(I’ll be back·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가 몇 년 후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등장할지 궁금해졌다.

오피니언 팀장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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