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주삿바늘, 안녕~" 반창고형 주사 니들패치 붙여보니

송경은 기자 2018. 8. 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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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무해 DNA 단백질 니들패치 상용화 눈앞
미세돌기 거쳐 몸속 약물 전달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패치’를 피부에 붙인 모습. 주삿바늘 대신 체내에 약물을 전달해 줄 수 있다. - 대전=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패치 가운데 부분을 꾹 눌러 보세요. 아픈 느낌은 없을 겁니다.”

20일 대전 유성구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융합산업진흥센터. 지난달 이곳에 설립된 연구소기업 에이디엠(ADM)바이오사이언스의 윤석민 대표는 본인 팔에 붙인 동전 크기의 ‘니들패치(needle patch)’를 연신 눌러 보이며 니들패치를 처음 사용해 보는 기자를 안심시켰다.

반창고처럼 피부에 붙이는 니들패치는 주삿바늘 대신 체내로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다. 앞서 기계연은 세계 최초로 인체 무해 성분인 천연 DNA 단백질을 사용해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패치’를 개발했다. ADM바이오사이언스는 이 니들패치를 상용화 하기 위해 설립됐다. 반경 2㎝ 수준의 니들패치를 연간 240만 개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갖췄다.

시제품 상자에서 막 꺼낸 니들패치의 바닥면을 가까이서 보니 털처럼 가는 바늘 모양의 미세돌기가 일정 간격으로 배열돼 있었다. 바늘 모양이긴 하지만 물에 잘 녹는 DNA 단백질로 이뤄져 주삿바늘처럼 딱딱하지는 않았다. 패치를 피부에 붙이면 이 미세돌기들이 피부 안쪽에서 수분과 만나 녹고, 이때 안에 들어 있던 약물이 체내로 전달된다. 윤 대표는 “영유아나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에 닿는 니들패치 아랫면에는 털처럼 가는 미세돌기가 솟아 있다. 피부 안쪽에서 수분과 만나 녹으면서 안에 있던 약물이 체내로 전달된다. - 대전=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DNA 니들패치를 고안한 정준호 기계연 나노융합기계연구본부장(책임연구원)은 “미세돌기가 몇 분 안에 다 녹는 데다 길이도 짧아 피부로 들어가도 통증이나 출혈이 없다”며 “미세돌기 자체가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약물을 정해진 일정한 양으로 투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돌기 길이는 의약품용은 650~9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용은 300㎛ 수준으로 제조된다. 

이날 기자는 화장품용 니들패치를 손등에 붙여 봤다. 처음 패치가 피부에 닿을 때 촉감은 반창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분 정도 지난 뒤에는 오돌토돌한 면에 지압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는 그 느낌이 좀 더 강해졌다. 10분 뒤 패치를 떼자 미세돌기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30분쯤 뒤에는 이런 홍조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 본부장은 “의약품용도 하루면 자국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외에서 의약품용 니들패치가 판매 허가를 받은 사례는 없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니들패치는 전부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의 흡수를 도와 주는 수준의 제품들뿐이다. 미국 조지아텍에서 개발한 독감백신용 니들패치가 유일하게 2상 임상시험까지 진입했지만, 천연 성분이 아닌 폴리비닐피롤리돈(PVP)을 소재로 사용해 상용화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헤어 스프레이, 염색약 등에 들어가는 PVP는 혈액이나 체액과 접촉될 경우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 화장품용 니들패치 소재로 가장 흔히 사용되고 있는 히알루론산은 백내장이나 관절염 치료를 제외하고는 피하에 쓸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DNA 니들패치는 인체 독성이 없어 비교적 빠르게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기능성 화장품이나 의약품의 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연어 정자 DNA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단백질은 세포 재생을 돕는 효능이 있어 피부 미용을 위한 재생크림, 필러는 물론이고 근육이 손상된 운동선수나 오십견 환자의 근육 주사제에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 ADM바이오사이언스는 다양한 제약사, 화장품 회사들과의 제품 공동개발 방안을 논의 중이다. 내년에는 협력사와 함께 백신 3종, 바이오의약품 3종 등 총 6종의 기존 의약품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이미 주사제로 쓰이고 있는 의약품의 투여 경로만 변경하는 것이어서 임상시험 기간이 신약에 비해 훨씬 짧다. 약물별로 유효성을 검증해 5년 내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생크림 등 화장품용 니들패치 제품은 올해 10월경 바로 출시된다.

한국기계연구원·동아일보

이전까지 DNA 단백질을 약물 전달 틀로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줄곧 기계공학 분야만 연구해온 정 본부장은 “DNA 단백질로 전자소자나 광학필름에 들어갈 미세구조체를 개발하던 중 ‘전자기기에 쓰기엔 물에 너무 잘 녹는다’는 생각에 막막했다. DNA 단백질 미세구조체를 어떻게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니들패치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그는 “DNA 니들패치는 제게 ‘인생 기술’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바이오 분야엔 문외한이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관심 분야가 확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임상시험 전문 서비스 기업인 ADM코리아의 대표이자 창업자이기도 하다. KAIST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중앙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20여 년간 의약품 개발의 성공과 실패를 눈앞에서 직접 경험하며 안목을 쌓아 왔다. 윤 대표는 “지인을 통해 우연히 기계연이 개발한 니들패치를 접하게 됐다.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거란 생각에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며 “순수 국내 기술로 해외 시장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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