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은 특검①]60일간 헛물 켠 특검..예고된 '실패'

이기민 2018. 8.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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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진상규명 위한 특별검사팀의 박상융 특검보가 4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 브리핑룸에서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이기민 기자]‘드루킹’ 김동원 일당의 ‘댓글 여론조작’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6월27일 공식 발족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25일로 60일간의 수사를 마치고 해단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지난 24일 간소한 해단식을 마친 후 드루킹 일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 지사의 옛 보좌관 등 총 12명을 기소했다.

당초 특검팀은 수사 초기 검·경 단계에서는 밝히지 못한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진상을 규명할 거란 기대를 모았지만 수사 중간 각종 악재를 겪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달 23일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사망으로 정치권의 집중 포화를 받았고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 동력이 꺾였다.

이에 따라 드루킹 일당과 김경수 지사 등 정치권 인사들과의 ‘유착관계’를 밝혀내는 데도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실패한 검·경 초동 수사 부담 안고 출발


허익범 특검은 지난 6월7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20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같은달 27일 공식 출범했다. 특검팀은 31억 4900만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이번 특검은 6·13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간 정쟁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수사 대상에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포함됐을 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비해 발족 전부터 수사 성공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실제 경찰은 수사 개시 후에도 드루킹 일당의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일명 ‘산채’의 출입을 제지하지 않는 등 수사 은폐, 축소 의혹을 받았다.

경찰은 산채 외곽 CCTV 확보나 관련자 계좌 추적 과정에도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4월16일 “드루킹이 김경수 의원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김 의원은 거의 읽지도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흘 뒤 김 지사가 드루킹에게 기사 10건의 인터넷 주소를 보내며 “홍보해주세요”라고 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검찰 역시 드루킹 일당 4명을 기소해놓고도 5월2일 첫 재판 때까지 증거분석을 마치지 못해 재판부로부터 “증거물 분석도 못 끝냈는데 기소를 했나”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도 못된 사두사미(蛇頭蛇尾) 특검 수사

이 같은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이번 특검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검이 이번 수사를 통해 그나마 얻은 성과는 ‘댓글 조작’ 추가 발견으로 이미 구속된 드루킹 일당 4명을 추가 기소한 것과 불구속 상태였던 ‘초뽀’ 김모씨, ‘트렐로’ 강모씨를 구속한 것이 전부다.

특검팀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도 확보한 증거의 분석을 마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이 별도로 확보한 방대한 디지털 증거들은 대부분 풀기 어려운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득신 특검보는 지난달 18일 “지금까지 확보한 디지털 증거는 200여 점이고 28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며 "이 정보를 A4 용지에 출력해 쌓으면 2800㎞ 높이로 63빌딩 1만개, 롯데월드타워(123층) 5000개 분량”이라고 말했다.

최 특검보는 또 이들 가운데 30%~35%가 이중 암호나 여러 개의 특수한 알고리즘을 접목해 암호를 보안하는 프로그램인 ‘트루크립트’(TrueCrypt)로 이뤄졌다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도 풀기 어렵다고 알려질 정도로 보안수준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결국 촉박한 시간과 드루킹 일당의 비협조로 인해 김 지사에게 후원한 정치자금 내역 폴더인 ‘바둑이 폴더’에 걸려있는 암호도 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 하겠다? 빈 수레 된 특검

법조계에서는 특검팀이 풀기 어려운 증거 분석과 드루킹 일당의 소환에만 매진하느라 핵심 정치권 인사들의 소환조사는 뒤로 미뤄 수사에 실패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검팀은 지난 6일 전까지 이 사건에 연루된 핵심 정치권 인사들은 부르지 않은 채 드루킹 일당만 수시로 불러 진술조사를 벌여왔다.

그러나 드루킹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수사 핵심으로 꼽혀온 김 지사와 드루킹 사이 댓글 조작 공모혐의를 입증하는데도 사실상 실패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제출한 킹크랩 가동 데이터 등은 직접 증거라기보다 정황 증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허 특검은 공식 출범 첫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지만 결론적으로 진상규명에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향후 책임론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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