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세계 첫 자율주행차는 한국"..25년 전 서울 시내 달렸다
청계고가~63빌딩 주행 성공
산업화 제안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는 상당부분 외국기술 의존
"범부처 자율차 개발 조직 만들고
현대차와 삼성전자도 손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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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뚱거리는 국내 자율주행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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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25년전, 한국에선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달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 신세를 지면 어쩌나, 애꿎은 사람이 다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했다. 운동장에서만 시험했던 자율주행차량을 실제 도로로 끌고 나가기 전날 밤이었다. 25년 전인 1993년 6월의 일이었다. 이튿날 차량 한 대가 고려대 서울캠퍼스 교문을 빠져나왔다. 당시 고려대 산업공학과 한민홍(현재 76세) 교수가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를 개조해 만든 자율주행차였다. 차는 서울 청계고가차도와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를 거쳐 여의도 63빌딩까지 약 17㎞ 구간을 무사히 자율주행했다. (동영상 joongang.joins.com) 처음엔 한 교수가 직접 운전하다가 청계고가에 오른 뒤 자율주행 모드로 바꿨다. 차량은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을 스스로 분석해 차선을 지키고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차선을 바꾸는 기술은 아직 없었다. 한 교수는 “시험주행장을 달린 사례는 있지만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누빈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2년 뒤인 95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한 교수는 “국제 학회에서 성과를 발표한 뒤 독일 벤츠와 폴크스바겐이 기술을 배우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정부에는 산업기술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한 교수는 “글쎄,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결국 세계 최초로 시내 주행을 가능케 했던 기술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까지 연결되지 못했다.
차선 변경, 신호 인식에 양보 운전까지. 자율차 기술은 25년 전보다 한층 발전했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다르다. 현대차 등이 국내에서 개발한 부품도 있지만, 주요 부분품 상당수가 외국산이다. 전방 영상 인식 장치는 인텔이 17조원에 인수한 이스라엘 업체 ‘모빌아이’ 것이고, 두뇌에 해당하는 영상 판독ㆍ처리 장비는 미국 엔비디아 제품이다. 감지장치 등도 수입산을 썼다. 필요한 부분품들을 외국에서 들여와 국내 도로에서 달릴 수 있도록 현대차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수많은 시험을 거쳐서는 시승 차를 만든 것이었다. 25년 전에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율주행 첨단 기술을 버린 한국 자율주행차의 현주소다.
이래선 문제다. 자율주행차가 양산 판매될 때 과실의 상당 부분이 외국 부품업체에 돌아간다. 더구나 자율주행차가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 셔틀버스 운전기사 같은 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가 생기는 곳은 자율차 부품을 만들어 파는 나라다. 세계 각국이 자율차와 부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이미 미국ㆍ독일 같은 전통의 자동차 강국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구글ㆍ우버 같은 정보기술(IT) 관련 업체 중심으로, 독일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율차를 개발 중이다. 구글 자율차는 이미 실제 도로를 수십만㎞ 돌아다녔다. 인공지능(AI)에 강한 중국 역시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섰다. 중국 바이두는 미국 포드와 함께 라이다(레이저를 이용한 레이더로 자율차용 핵심 영상 감지장치) 기술 업체에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투자하는 등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율차 기술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현재 국내 자율차 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등이 제각기 민관협의체 등을 만들어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산자부는 부품과 기술 개발, 국토부는 자율차에 교통 정보를 정하기 위한 도로 인프라 등을 개발한다. 하지만 자율차는 이렇게 '따로국밥' 식으로 추진할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자율차는 자동차와 도로 인프라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 융합기술이기 때문이다. 통신, 반도체, 해킹에 대비한 보안기술까지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서 일본은 ‘범부처 간 전략 혁신 추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율차 관련 기술을 통합 개발하고 있다. 여기엔 민간 기업과 연구소를 비롯해 일본 총무부ㆍ경제산업부ㆍ국토교통부에 경찰청까지 자율차와 관련한 모든 부처가 들어와 있다. 의장은 도요타자동차가 맡았다. 민간 기업 주도 아래 연구소와 정부가 어떻게 자율차 개발 역할을 나눌지 함께 논의해 결정하고 실행한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일본 자율차 기술을 알린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계명대 자동차지능공학과 이재천 교수는 “한국도 총리실 등에 자율차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개발을 통합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에 인색하다”는 쓴소리를 듣고 있다. 자율차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완성차ㆍ부품ㆍ정보기술(IT) 기업 간에 개발 협업체계가 구축됐다. 어느 기업 혼자 완성하기에는 힘든 융합기술이어서다. 크게는 양분됐다. 인텔이 인수한 모빌아이를 중심으로 BMWㆍFCA(피아트 크라이슬러그룹) 등이 뭉친 진영과 엔비디아를 축으로 한 테슬라ㆍ폴크스바겐ㆍ볼보 그룹이 양대 강자다. 최근엔 핵심 기술을 가진 IT업체 모빌아이와 엔비디아가 워낙 고자세여서 글로벌 업체들이 삼성전자에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기술이 자율차 개발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측도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제안이 들어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협력 제안 명단에 현대기아차는 없다. “대기업 간에 묘한 견제 의식이 있는 것 같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기술ㆍ데이터와 삼성전자의 반도체ㆍAI 능력을 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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