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뮴 배출 1위 산골마을..제련소가 부른 재앙

2018. 8. 2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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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최상류 봉화의 석포제련소
연간 공장밖 32kg 배출..전국 절반
강변 수십미터 곳곳 붉게 물들어
"주변 산림 '황산테러' 피해 방불"

폐수 무방류 시스템 구축한다지만
유해물질 98%는 대기 배출 '무의미'
비 오면 결국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영풍, 개선 미적..제재엔 법적 대응
주민·환경단체 "공장 이전·폐쇄를"

[한겨레]

낙동강 발원지에서 불과 20여㎞ 떨어진 낙동강 최상류 하천 변에 자리 잡고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뼈가 물러져 변형되거나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는 이타이이타이병. 이 병의 원인 물질이자 1군 발암물질인 카드뮴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곳은 대규모 산업단지를 포함한 도시가 아니라 경상북도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인 봉화군이다. 화학물질안전원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를 보면, 2016년 봉화에서 토양, 대기, 물로 배출된 카드뮴은 32㎏으로 전국 배출량 64㎏의 절반에 이른다. 석포면에 있는 석포제련소에서 배출한 것이다.

3개의 큰 공장으로 이뤄진 석포제련소에서는 불산, 염산 등 사고위험이 큰 물질을 부원료로 대량 사용하며 카드뮴 외에도 황산, 황산동 등의 유독물질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지난해 생산한 카드뮴은 936t, 황산은 71만5907t으로 주력 제품인 아연괴 생산량 35만9849t의 약 두 배다. 제련소 자체가 거대한 화학공장이자 공해유발 시설인 셈이다.

석포제련소가 1970년부터 48년간 가동되며 환경에 끼친 피해는 이미 상당 부분 확인됐다. 2016년 환경공단 조사 결과, 대기로 배출된 유해물질이 스며들어 제련소 주변 토양 4만5058㎥가 카드뮴, 비소, 아연 등 중금속으로 오염된 것으로 분석됐다. 제련소 반경 4㎞의 448개 지점 대상 조사에서는 인간 건강과 동·식물 생육에 지장을 주는 토양오염대책 기준 농도 초과율이 아연은 최대 6.6배, 카드뮴은 최대 33.6배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석포제련소에 의한 환경피해 차단과 복원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안동댐 상류 오염개선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피해 실태를 더 정확히 파악해 작업 범위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가 늦어지면서 실제 작업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낙동강 상류 환경관리협의회’ 전미선 공동위원장과 함께 찾아간 석포제련소 제2공장 바로 옆 낙동강 변 약 40~50m 구간은 제련소 방향에서 스며 나온 오염물질로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전 위원장은 “제련소가 하천으로 오염물질 침출수가 흘러드는 것을 막겠다며 오염 지역에서는 사용하면 안 되는 그라우팅 공법을 공장 외곽 곳곳에서 적용해 지하수까지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라우팅은 지하 깊숙이 천공을 한 뒤 방수제와 고화제 등을 주입해 물 흐름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나무가 고사하고 식생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석포제련소 제2공장 옆 야산. 제련소는 과거 산불 피해를 주장하면서도 제련소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영향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푸르러야 할 공장 주변 산 곳곳은 큰 소나무들이 말라 죽은 가운데 지표에는 식생이 뿌리 내지지 못해 거친 토양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수목 고사 현장을 둘러본 김종원 계명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토양 속에는 소동물들을 찾아볼 수 없고, 큰 나무들은 가지부터 말라 죽고, 작은 나무는 잎 가장자리부터 타들어 가는 전형적인 산성화 피해 형태”라며 “심한 곳은 거의 황산테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공장 아래쪽 물속에서는 피서객들이 제련소 상류 강 곳곳에서 잡고 있는 다슬기도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낮 공장 안과 주변 도로에서 유해가스 냄새를 느낄 수는 없었으나, 유영규 석포번영회장은 “굴뚝 높이 때문에 제련소 바로 옆보다 제련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풍향에 따라 아황산가스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공기가 가라앉는 저기압일 때와 새벽 시간대 같은 때에 특히 심하다”며 “환경피해 문제가 거듭 제기돼도 회사 태도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제련소 하류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석포제련소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가장 큰 이유는 위치다. 낙동강 발원지에서 20여 ㎞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상류 하천 변에 붙어 있어 유독물질 대량 유출 사고라도 나면 손쓸 틈도 없이 환경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련소와 지자체, 환경부 등의 태도는 이런 불안감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다.

대구지방환경청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경북도, 봉화군 등이 국회 이정미 의원(정의당)에게 제출한 최근 10년치 석포제련소 법률 위반 자료를 보면, 40여 건 가운데 단 1건을 제외하곤 모두 2014년 이후 적발 사례다. 제련소 하류 주민들이 환경피해를 적극 제기하고 나선 이후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08~2012년 사이 5년 동안엔 석포제련소에서 단 한 건의 위반 사례도 적발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지난 10년간 석포제련소에서 적발한 산업안전 관련 법규 위반 사례 가운데 45건이 2008~2012년 적발 사례인 점과 대비된다.

석포제련소 제2공장 옆 낙동강 변이 공장 쪽에서 스며 나온 침출수로 붉게 오염돼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지자체와 환경부는 관리 감독에 소극적이었고, 영풍은 지적되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버티면서 소송으로 가거나 부과금이나 과징금 등 돈으로 바꿔 해결해왔다. 그러다 보니 실제 환경문제가 개선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풍은 지난 2월에도 기준치를 넘는 수질오염물질을 내보내고 공장 안 토양에 폐수를 배출한 것에 대한 경북도의 조업정지(20일) 처분을 과징금(9000만원)으로 대체하려다 실패하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배상윤 석포제련소 관리본부장은 “조업정지 기간은 20일이지만 준비 과정 때문에 실제론 개월 단위로 공장을 세워야 하는 과잉처분이고, 시료를 한 번만 채취해 내린 절차상 잘못된 처분이어서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경우 시료를 한 번만 채취해도 된다”며 경북도의 처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행정심판은 다음 달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까운 장래에 조업정지 처분이 이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풍이 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낙동강 수질 오염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자 영풍은 지난달 26일 석포제련소로 언론인들을 초청해 내년 말까지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폐수가 한 방울도 공장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환경 오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석포제련소에서 환경 중으로 배출하는 중금속을 포함한 유해물질의 98%는 대기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대기로 배출된 중금속은 토양에 떨어지고 일부는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 온 주민 조직과 환경단체 사이에는 최근 신속한 피해 복원 요구를 넘어 제련소 자체를 이전하거나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환경피해 문제로 대규모 노후 제련소를 폐쇄한 사례는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도 없지는 않다. 외신 보도를 보면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동제련소인 베단타제련소가 격렬한 환경오염 반대 시위에 밀려 최근 영구 폐쇄됐고, 중국에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아연제련소인 주저우제련소가 환경오염을 줄이려는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올해 말까지 폐쇄될 예정이다.

봉화/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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