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도덕하다고? 의료계 낙태시술 전면중단
지난 17일 복지부는 낙태시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관련 시술을 한 의사를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 시행에 들어갔다. 산부인과의사회는 개정안 고시 전까지 낙태가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포함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김재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선 산부인과 원장)는 "개정 과정에서 국민과 산부인과 의사들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낙태죄 정책이 일방적으로 고시된 것"이라며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고시가 철회될 때까지 낙태시술을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행정처분이 규정한 비도덕적 행위에는 진료 중 성범죄,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 사용, 일회용 의료용품 및 주사기 등 재사용, 대리 수술 등 의사가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사안이지만 낙태시술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의사들 주장이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진 임부의 안타까운 사정 등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낙태시술을 한 것을 두고 마치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것을 의사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위헌 소송이 제기된 낙태죄 자체도 실효성이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이사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담당하는 낙태시술 중 합법적인 건은 100건 중 5건도 안 된다"며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를 원하는 임부를 위해 범죄자가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술을 할지 아니면 고통받는 임부를 외면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가 의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로 대부분의 임신부가 태아 기형여부를 알기위해 양수검사를 받는데,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아도 현행법상 낙태는 불법이다.
실제로 낙태시술은 대부분 불법이고 정확한 실상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복지부가 2005년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를 조사한 결과 34만2000건에 달했다. 2010년에는 절반 수준인 16만8000건으로 줄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산부인과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낙태시술이 연간 70만~80만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학계는 포털 빅데이터 등을 분석해 연간 최대 50만건까지 낙태시술이 진행됐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여성계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산모와 태아 간 대립구도'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여성단체 '비웨이브'는 지난 25일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를 열고 이번 개정안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반면 복지부는 이번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이 불법 낙태시술 의료인에 대한 별도 처벌 강화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불법 임신중절수술은 형법에 따라 형사처벌(낙태죄) 대상"이라며 "기존에도 불법 낙태시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서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간주해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왔고 이번에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구체화해 그 처분 기준을 정비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7년) 불법 낙태시술을 한 총 21건의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들에게 1개월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복지부 개정안 고시와 이에 따른 의료계 반발로 낙태시술 전면 중단까지 이르게 되면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낙태시술은 임신 기간이 길어질수록 산모 건강에 치명적이라서 적절한 시기에 전문의료진에게 안전한 방법으로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시술을 전면 중단하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억지로 유지하거나 불법 시술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산부인과의사회는 기존 모자보건법이 지정한 이른바 '합법적 낙태' 수술은 계속할 방침이다. 모자보건법 제 14조에 따르면 ▲임신부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이 지속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 5가지 사유의 낙태만 허용된다.
[신찬옥 기자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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