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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외교에서 '한목소리 원칙'과 재판거래

입력 2018.08.29. 03:00 수정 2018.08.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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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거래 의혹 재판 많다면서 강제징용 재판에 수사력 모아
외교는 행정에서 특별한 분야.. 엄격한 삼권분립 적용 어려워
재판 연기 비판할 수 있지만 재판거래라고 하는 건 무리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권력분립의 개념을 근원에서부터 살펴보면 외교에 특별한 위치가 부여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분립을 처음 언급한 영국 정치철학자 로크는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으로 나누지 않고 입법 행정 연합(외교)권으로 나눈다. 사법시험 준비하며 달달 외운 박제화된 권력분립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외교에는 ‘한목소리 원칙(one voice principle)’이란 게 있다. 행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부처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행정부를 넘어 국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1828년 과테말라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논란이 됐을 때 랜실롯 섀드웰이라는 영국 대법원장이 “영국 외무성이 과테말라를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했는데 영국 법원이 과테말라는 스페인의 영토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이 원칙을 천명한 이후 외교의 주요 원칙으로 통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재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면서 검찰이 유독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왜 하필이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재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고려하면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사안을 놓고 정부와 법원이 협의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 강제징용 피해보상과 관련해 ‘한목소리 원칙’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과거 적국(敵國)에 의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한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중국인이 캘리포니아주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에서 미국 국무부는 “각 주(州)가 대통령이 표명한 국가 전체의 외교 정책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부담을 부과할 자유를 지닌다면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leverage)를 심각하게 제약함으로써 외국 정부와 교섭할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그 법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외교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다. 강제징용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돼 정부 간 배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배상 의무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배상 의무까지 사라졌다고 본다. 한국이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가 남아 있다고 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위안부 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일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 과거 모든 정부가 우려했던 것이다.

2012년 한국 대법원의 한 소부(小部)가 일본 기업들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떠나 한국 정부가 취해온 애매모호한 입장이란 선(線)을 넘어서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깬 측면이 있다.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손익은 따져봐야 한다. 일본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의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국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한다고 한들 일본에서 집행할 방법은 없다. 결국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한국 정부가 압류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이 초래할 외교적 손실은 압류의 실익보다 클 수 있다. 영화 ‘군함도’에서 보듯 사지(死地)로까지 몰렸던 강제징용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해야 하는 냉엄한 외교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법원과 협의해 재상고심 재판을 가능한 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재판의 확정을 미룬 것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뒤에 그나마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완곡한 방식의 대응이었다고 본다. 가타부타 결정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는 방식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재판거래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이 대목은 외교의 현실을 고려한 보다 융통성 있는 권력분립 개념을 적용할 곳이 아닐까 싶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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